반도체 호황이 대규모 성과급과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수익성이 떨어진 전통 제조업은 미래 성장에 필요한 자원마저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자본과 인재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자동차·석유화학·철강 등 업종의 경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생산성 혁신과 함께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주요 업종 기업의 내년 성과급 지급 규모는 최대 70조원으로 올해(10조9000억원)의 6.4배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성과급만 약 60조원으로 예상돼 업종 간 보수 격차가 한층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 성장성과 보상 전망에 대한 기대는 이공계 인재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취업과 연계된 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등 5개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2027학년도 수시 지원자는 5992명으로 전년보다 19.4%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쟁률은 28.53대 1이었다.
반면 삼성SDI와 연계된 성균관대 배터리학과 지원자는 전년 대비 117명(36.2%) 급감했고 통신·모바일 분야 계약학과 지원자도 각각 11.0%, 21.3% 줄었다. 구직난 속 대기업 취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계약학과 전반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분야별 지원 양상은 엇갈린 것이다.
AI를 둘러싼 성장 기대는 기업의 투자 방향에도 반영되고 있다. 전통 제조 업체 역시 AI 수요와 연결된 사업에 자본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중이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냉각솔루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생산거점 고도화와 생산능력 확대에 22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 두산에너빌리티도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발전설비 수요 증가에 맞춰 창원사업장의 대형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연간 8기에서 2028년까지 12기로 늘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에 집중된 성장 동력을 전통 제조업으로 넓히려면 기존 제조 역량에 AI를 결합해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업황 부진으로 투자와 인력 확보가 위축되면 기술 전환까지 늦어져 산업 간 경쟁력 격차가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제품 개발과 품질 검사, 철강·석유화학은 공정 제어와 에너지 사용 최적화 등에 AI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다.
다만 인공지능 전환(AX)만으로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구개발과 설비 고도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고부가 제품 중심의 사업 재편을 뒷받침할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자본과 인재가 성장 산업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전통 제조업도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고 재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본과 인재가 수익성이 높은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산업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까지 무너지면 이는 곧 국가 경제 전체의 손실"이라며 "부진한 산업의 생산성을 높여 스스로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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