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초점] 역사왜곡·소재 논란…'암살자(들)' '닥터X'가 던진 현대사 콘텐츠의 딜레마

닥터X 암살자들 포스터 사진SBS 하이브미디어코프
'닥터X' '암살자(들)' 포스터 [사진=SBS 하이브미디어코프]
대중문화계가 현대사를 다루는 방식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정치권 공방으로 번진 데 이어,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 역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로 방영 중단 청원까지 제기됐다. 현대사의 아픔을 조명하려는 창작적 시도가 이념 공방과 출연 배우를 향한 공격으로까지 번지면서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가 대중문화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방송된 '닥터X'(극본 평성근·연출 이정림) 6회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후유증에 시달려온 환자의 사연을 그렸다. 군의 최루탄과 헬기 사격,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하는 518번 버스, 가상의 전직 대통령과 피해자가 대면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해당 회차는 자체 최고 시청률 19.5%를 기록했지만 장외에서는 공방이 커졌다.

방송 직후 국회전자청원에는 "일본 원작에는 없는 관련 내용을 추가한 것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끼워 맞추기"라며 방영 중단과 제작진의 국회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국가 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조명해 울림을 줬다"는 호평과 "메디컬 드라마 서사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갈등은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김지원의 SNS로까지 옮겨붙어 비난 댓글이 쏟아졌고, 이옥규 스튜디오S CP가 SNS에 "두려움 없다(no fear)"라는 문구를 남기며 파장은 더 커졌다.

앞서 영화 '암살자(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역시 역사 왜곡 공방으로 몸살을 앓았던 바. 역사적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배우 개인의 일상과 영화제 일정까지 흔든 사례였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이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거센 비판에 부딪혔고, 그 여파로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려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비슷한 시기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도 안전사고를 우려한 제작사 측의 요청으로 배우 이민호의 '액터스 하우스'를 비롯해 감독·배우들의 레드카펫, 무대인사 등 공식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 파장은 국내를 넘어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서한으로까지 미치며, 영화제의 독립적 선정권을 둘러싼 논쟁도 낳았다.

이 같은 상황에 문화 예술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정지영, 이명세 감독 등 영화인 20여 명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작품에 대한 비판이 배우와 제작진 개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며 "영화를 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도희야' '다음 소희' 등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꾸준히 연출해 온 정주리 감독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사안을 언급하며 창작자로서의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정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위축이 된다. 훗날 상처받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반응을 마주하면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며 창작자로서의 고충을 밝혔다.

현대사는 대중문화에서 꾸준히 다뤄지는 소재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닥터X'가 5·18 민주화운동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인 만큼 대중문화가 이를 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데 무조건 정치적 이슈로 치부해 공격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이런 공격이 이어지면 제작자와 창작자가 현대사 이슈를 다루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결국 K콘텐츠 산업의 표현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을 향한 과도한 공격에 대해서도 "출연진은 물론 광고 브랜드에까지 공격이 이어지는 것은 지나치다. 일종의 사회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며 "이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유롭게 표현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사라지고 결국 우리 사회가 퇴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밝히면서 그 안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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