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재판 참관기 5] 오세훈의 다짐과 약속

  • 자신에게는 더 엄격하게, 시민에게는 성과로…항소심 무죄 선고를 지켜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 무죄 선고 후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 시장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하고 끝까지 믿어준 시민들에게 더욱 엄격한 처신과 시정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 시장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하고,끝까지 믿어준 시민들에게 더욱 엄격한 처신과 시정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연합뉴스]

 
"오세훈이 그럴 사람인가."
1심 선고에서 오세훈 유죄 판결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다. 오랜 시간 지켜본 그의 생활 태도와 판결 사이에는 쉽게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믿음과 법정의 판단은 별개였다. 그 간극을 확인하고 싶었다. 필자가 항소심 공판을 줄곧 지켜본 이유다.
 
구회근 재판장과 박주영 주심판사의 질문, 명태균의 증언, 김한정의 진술, 김종인의 증언, 변호인들의 신문까지 어느 하나 흘려들을 수 없었다.
 
김한정 측 변호인의 날카로운 신문과 사실관계를 짚어가는 김종인의 증언도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명태균을 향한 재판부의 질문이었다.
 
말의 앞뒤가 맞는지,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는 대목은 없는지, 직접 겪은 사실과 추측이 뒤섞인 것은 아닌지. 질문이 이어질수록 이 재판이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지가 또렷해졌다. 방청석의 필자에게는 때로 허위 진술을 다그치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물론 그것은 방청객의 느낌이었다.
 
재판부의 판단은 끝내 증거와 판결 이유로 확인해야 했다. 그사이에도 피고인석의 오세훈에게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필자의 눈에 그는 결백을 믿는 사람의 단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만 최후진술에서는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 재판의 무게와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속마음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치인의 능숙한 말보다 한 사람이 견뎌온 시간이 먼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는 오래전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변호사 시절 일조권 소송으로 이름을 알리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던 시절이었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과 광고 출연으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그는 대구의 한 시장을 찾았다가 자신을 알아보는 상인들을 만났다고 했다. 사진을 찍자고 하고 사인을 부탁했다. 그들은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분들이었다.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한 자리에서 그가 마음에 새긴 것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자신을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필자는 기억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 했다는 그의 설명도 그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다.
 
방송인으로 얻은 인기는 정치에 들어선 뒤 공적인 책임으로 이어졌다. 필자가 지켜본 오세훈에게는 자신을 끊임없이 단속하려는 태도가 있었다. 그것이 때로 답답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승부처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였으면 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이번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는 사람이 불출마부터 선언했기에 필자는 비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도 그가 나섰다면 선거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선거의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 돌아보면 필자가 답답해했던 그 신중함 역시 그가 스스로에게 세워 놓은 기준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3일 오후 1시 50분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서울고등법원에 도착한 오 시장이 법정으로 향했다.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비슷한 질문이 거듭되자 그는 "긴장하셨나 봐요"라며 오히려 취재기자에게 되물었다. 이번 재판에서 오 시장 나 자신은 긴장하지 않았다. 자신 있다는 것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특히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이 힘찼다.
 
긴장하고 있던 쪽은 오히려 이를 지켜보는 필자였는지도 모른다. 그 여유와 걸음을 보며 그는 자신의 결백과 재판에서 설명해온 사실관계에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선고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판단은 여전히 법정 안에 남아 있었다.
 
오후 2시, 선고가 시작됐다.
재판부가 짚은 핵심은 두 가지였다. 오 시장이 명태균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는지, 김한정에게 그 비용을 대신 내 달라고 요청했는지였다. 이에 관한 유일한 직접 증거는 명태균의 진술이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이어진 판결 이유는 필자가 공판에서 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의미를 되짚게 했다. 명태균의 진술에는 직접 경험과 추측·과장을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객관적 사정이나 주변인 진술과 배치되는 대목도 있었다. 오 시장이 처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명태균에게 울면서 여론조사를 부탁했다는 설명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이 일부 진술을 믿어 유죄로 인정한 부분도 다시 검토했다. 전체적인 신빙성이 약해진 진술 가운데 일부만 믿으려면 그 부분을 신뢰할 충분한 근거나 보강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항소심은 그러한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여론조사 결과가 공유되고 돈이 지급됐다는 사실만으로 오 시장의 의뢰와 대납 요청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유죄의 의심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의심과 증명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했다.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돼야 하며 그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이었다.
 
마침내 주문이 낭독됐다.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 믿고 기다렸던 말이었다. 사람에 대한 필자의 믿음과 별개로 법정은 증거를 검토한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 차이를 기억하면서도 안도하는 마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오후 2시 20분, 취재진 앞에 선 오 시장의 첫 마디는 뜻밖에도 사과였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
검찰과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을 보여 심려를 끼쳤다며 앞으로 더 조심스럽게 처신하겠다고 했다. 이어 재판 중에도 자신을 믿고 다시 일할 기회를 준 서울시민에게 감사했다. 끝까지 신뢰를 거두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준 이들 덕분에 버티며 일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페이스북에서는 "늦었지만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엄격한 자세로 공직에 임하고, 시민의 믿음에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행복한 '삶의 질 특별시 서울'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필자에게 그 말들은 오래전 시장 상인들 앞에서 마음에 새겼다는 다짐과 겹쳐 들렸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겠다는 마음이, 이제 자신을 믿고 선택한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말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참관기 제목을 '오세훈의 다짐과 약속'으로 정했다. 다짐은 자신을 향한다. 더 신중하고 엄격하게 살겠다는 자기 절제다. 약속은 시민을 향한다. 믿어준 이들에게 일과 성과로 보답하겠다는 책임이다.
 
무죄 선고는 그에게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게 했다. 그러나 그날 법정 밖에서 그는 또 다른 책임을 자신의 말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들었다. 이제 시정의 현장에서 그 다짐과 약속이 어떻게 실천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