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급변한 방송시장, 낡은 규제는 그대로

박종호 AI부 기자
박종호 AI부 기자
방송업계 관계자들과 처음 만난 자리였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옮기려던 기자에게 한 관계자가 말을 건넸다. "6개월만 업계에 대해 공부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곧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방송업계는 그만큼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년간 발전은커녕 변화 없이 제자리를 걷는 방송 업계의 현재,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 미래를 동시에 지적하는 한마디였다. 

이에 반해 방송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산으로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달라졌다. 정해진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과거와 달리, 이용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콘텐츠 기획과 제작, 유통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OTT와 숏폼드라마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더 이상 어떤 방송사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서로 얘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급변하고 있는 방송 환경에 수십년 동안 유지돼 온 방송 제도와 정책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방송사업자에게 적용되는 규제와 의무는 과거의 시장 환경을 기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변화한 현실에 맞춰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는 항상 되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이다. 케이블TV업계는 OTT로 시청 수요가 분산되고 가입자가 이탈하면서 수익성 악화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방발기금 징수율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방송서비스 매출액의 1.5%로 유지돼 있다. 

2024년 SO 전체 영업이익은 148억원에 그친 반면, 방발기금 분담금은 239억원에 달했다. 업계 전체 영업이익보다 기금 분담금이 더 크다. 이에 최근 케이블TV업계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을 상대로 방발기금 분담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방발기금 징수율 인하를 검토했지만, 조직 개편으로 관련 업무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이관됐다. 올해 방미통위가 관련 연구를 통해 사안을 살펴보고 있지만,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12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방송사업자들이 과거 시장 환경을 기준으로 설계된 규제와 기금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방미통위에 개선을 촉구했다. 김종철 방미통위원장도 통합미디어법을 비롯한 종합적인 입법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해 온 문제들이 실제 정책과 규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침체돼 있는 방송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부담 해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한 시장 환경과 사업자의 여건에 맞는 규제와 정책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방송 산업이 지닌 '공적 책임'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성' 등 본연의 가치는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업계 관계자가 "6개월이면 업계를 다 알 수 있다"는 취지의 말에는 낡은 규제 개선과 함께 산업 활성화를 꿈꾸는 현장의 기대감이 담겨있다. 그가 말한 6개월 뒤 방송업계를 바라봤을 때,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방송 생태계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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