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의 AI 국가론 ⑤] AI로 확보하는 재난 골든타임

  • PART 2. AI와 국가의 능력

  • [예측] → 최적화 → 확장 → 선제 개입

김정래 아주경제 전국팀장 사진 아주경제
김정래 아주경제 전국팀장. [사진= 아주경제]


인공지능(AI)이 국가의 행정과 판단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복지·재난·교통·민원에서 경찰·수사와 규제까지 영역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김정래의 AI 국가론'은 AI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능력과 책임의 문제로 바라본다. 국내외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AI가 행정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검증하고, 공무원과 조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핀다. 나아가 AI가 공권력과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짚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묻는다. 목표는 AI를 경계하는 국가가 아니라 AI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국가다. [편집자주]
 

재난이 닥치기 전에 국가는 얼마나 먼저 위험을 알아낼 수 있을까. 태풍의 진로를 하루라도 일찍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주민을 대피시키고 선박을 피항시킬 시간이 생긴다. 집중호우와 산불도 마찬가지다.

AI가 국가의 능력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영역이 재난이다. 중요한 것은 AI가 미래를 완벽하게 맞히느냐가 아니다. 위험을 더 빨리 파악하고 국가가 대응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는 2025년 2월 25일 ‘인공지능 예측시스템(AIFS·Artificial Intelligence Forecasting System)’을 정식 현업 운영에 투입했다. 기존 기상예측이 대기의 움직임을 물리법칙과 수학 방정식으로 계산한다면 AIFS는 과거 기상자료를 학습한 AI가 대기의 변화를 예측한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ECMWF가 이날 공개한 공식 자료 ‘ECMWF’s AI forecasts become operational’의 자체 검증 결과를 보면 AIFS는 태풍 진로를 포함한 여러 예측 지표에서 기존 최첨단 물리 기반 모델을 웃돌았고, 일부 지표에서는 성능 향상 폭이 최대 20%에 달했다.

ECMWF는 2025년 7월 1일 한발 더 나아갔다. 조금씩 다른 조건을 적용해 51개의 예측을 동시에 만드는 앙상블 모델 ‘AIFS ENS’를 현업에 투입했다. ECMWF가 이날 공개한 공식 자료 ‘ECMWF’s ensemble AI forecasts become operational’에 따르면 예측 생성 속도는 기존 물리 기반 앙상블 시스템보다 10배 이상 빨랐다.

재난 대응에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하는 것은 중요하다. 태풍이 어느 경로로 갈지, 집중호우가 어느 지역에 쏟아질지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까지 알아야 대피와 통제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AI가 기존 기상예측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ECMWF도 AI와 기존 물리모델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AI가 기상과학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측체계에 새로운 능력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상청은 ‘2026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에서 ‘기상·기후 AI 대전환’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AI 앙상블 규모를 오는 11월까지 51개에서 71개로 늘리고, 전지구 AI 예측 결과를 동아시아에서는 3㎞ 수준으로 상세화한다는 계획이다. AI를 활용해 태풍의 중심 위치와 강도, 강풍반경 등을 분석하고 진로를 예측하는 시스템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은 예측에서 끝나지 않는다. 위험을 먼저 알아내더라도 경보를 내리고 도로를 통제하고 주민을 대피시키는 행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확보한 시간은 사라진다.

지방정부에서는 AI를 실제 재난 대응에 연결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CCTV와 비전 AI를 결합해 침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침수나 맨홀 이탈 등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차량과 보행자에게 경고하고 원격제어를 통해 신속한 대응을 지원한다.

울산 북구는 폭우·침수와 산사태·산불 등을 대상으로 ‘스마트 통합재난대응서비스’를 운영한다. 위험이 감지되면 하천구역 차단기와 방송, 전광판 등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충북 제천시는 AI를 활용한 침수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은 드론과 AI CCTV를 결합해 재난 현장을 관제하고, 충남 예산군은 ‘피지컬 AI 기반 스마트안전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재난 대응을 넘어 도시 안전관리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라이다 센서와 지능형 CCTV를 활용한 AI 인파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올림픽대로 등 사고다발 구간에는 생성형 AI 기반 돌발상황 감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시립묘지에서는 AI를 활용해 산불을 감시한다.

행정안전부는 AI 재난 대응을 뒷받침할 공통 기반 구축에 나섰다. 지난 6월 ‘AI 기반 CCTV 관제지원시스템 및 재난안전 분야 AI 데이터 구축’ 사업을 시작해 산불·침수 분야 영상 학습데이터를 구축하고 AI 학습 정밀도를 높이는 작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AI 예측이 실제 재난 대응에 활용된 사례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1월 22일부터 5월 15일까지 AI 기반 산불 확산 예측 결과를 지방정부에 500회 이상 제공했다. AI가 재난을 예측하는 연구단계를 넘어 지방정부의 현장 판단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것은 기술의 종류가 아니다. 시간이다. 재난에서 몇 분, 몇 시간이 사람의 생명을 가른다. AI가 국가에 벌어줄 수 있는 것,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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