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유예 범위를 넓혔지만 대출 규제는 그대로여서 무주택 실수요자의 거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세입자를 낀 주택을 살 수 있는 길은 넓어졌지만 정작 자기자금이 전세보증금에 묶인 매수자는 잔금 마련 시 어려움을 해소하기 쉽지 않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임대 중인 주택의 실거주 유예 신청 기한은 올해 말에서 2027년 12월 31일까지 1년 연장된다. 기존 임대차계약 잔여기간에 더해 갱신계약도 1회, 최대 2년까지 유예 사유로 인정한다. 국토부는 오는 10월 1일 시행을 추진하며 갱신계약을 인정받으면 늦어도 2029년까지 입주하도록 할 방침이다.
입주를 늦출 수 있다고 주택 취득까지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수자는 허가받은 후 4개월 안에 주택을 취득해야 한다. 올해 5월 12일부터 계속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실제 입주 이후 2년간 거주해야 하는 원칙도 그대로다.
자금 조달을 제한하는 대출 규제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규제지역에서는 우대 대상이 아닌 일반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가격별 대출 총액 한도도 적용돼 실제 대출 가능액은 차주 소득과 기존 부채 등에 따라 줄어들 수 있다.
기존 실거주 유예 신청이 전체 토지거래허가 신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실거주 유예 신청은 135건으로 전체 신청 3012건 가운데 4.5%였다. 유예 신청은 전월 207건보다 34.8% 줄었지만 전체 신청도 비슷한 폭으로 감소해 비중은 같았다. 다만 전체 신청에는 즉시 입주 등으로 유예가 필요 없는 사례도 포함돼 있다.
세입자의 임차보증금을 승계하면 매도인에게 당장 지급할 현금은 줄어든다. 하지만 주택을 사려는 무주택자 역시 다른 전셋집에 계속 거주해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본인 자산 대부분이 현재 거주하는 주택의 전세보증금으로 묶여 있어 계약금이나 잔금에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증금 3억원이 있는 6억5000만원짜리 집을 사려면 보증금을 승계하더라도 부대비용을 제외한 3억5000만원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현금 여력이 있는 매수자와 달리 자기 돈이 현재 사는 집의 전세보증금에 묶여 있다면 별도의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같은 무주택자라도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가진 가구와 자산 대부분이 전세보증금에 묶인 가구 사이에 이번 조치의 체감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보증금 승계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단순히 더할 수도 없다. 임차인이 있는 주택은 보증금과 담보권 순위 등이 대출 심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승계한 보증금 역시 향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인 만큼 입주 시점의 반환 재원까지 마련해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예기간 연장이 당장의 거래량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나 서민·실수요자 우대 요건을 충족하면 일반 차주보다 완화된 대출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무주택이라고 모두 우대 대상은 아니다. 과거 주택 소유 이력과 소득, 주택가격 등에 따라 같은 무주택 실수요자 안에서도 대출 가능 규모가 달라진다.
반면 이번 조치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의 거래 가능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갱신계약까지 인정하면서 기존 임차인이 더 거주하는 조건으로 집을 사고팔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갱신계약은 유예 신청 전에 체결하고 갱신기간이 신청기간 안에 시작해야 인정된다. 모든 세입자의 거주기간이 자동으로 2년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세제 개편으로 나올 매물이 토허제에 막히는 엇박자를 풀고, 갱신계약까지 인정해 세입자가 사는 집이 거래되면서도 임대 물량으로 남도록 한 취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실제 거래로 연결되려면 거래 규제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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