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늘 개헌이 거론된다. 5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제도를 바꾸자는 게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8월 14일 X(옛 트위터)에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변경해 중간 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며,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2022년 대선 당시 저의 공식 입장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개헌으로 국회 권한을 강화해서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자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감사원 국회 이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수사기관을 비롯해 중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장의 국회 동의 필수 등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이런 내용의 개헌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 연임제·국회 권한 강화가 해법?
대통령 임기제를 4년 연임이나 중임으로 바꾸면 중간 평가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동안 보여준 국정 운영 능력과 성과를 평가해 재선을 시켜줄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를 통해 책임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중간 평가는 한 번으로 끝난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더 이상 중간 평가를 받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는 사실상 단임제의 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간 평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4년 연임이든 중임이든 중간 평가를 통한 대통령 권한 견제는 반쪽에 그치게 된다.
대통령 권한의 국회 분산은 어떨까? 감사원의 국회 이관 문제부터 보자. 현재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돼 있다. 그래서인지 감사원이 정권의 수족처럼 움직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시절에 벌어진 국정 행위를 감사한다. 새 정부 감사원이 전 정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뒤집기도 한다. 정치 감사, 보복 감사 논란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감사원을 국회 소속 기관으로 옮긴다고 이런 행태가 없어질까? 특정 정당이 과반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을 경우 감사원은 사실상 그 정당이 장악하게 된다. 그 정당이 여당이라면 감사원은 여전히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고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견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당의 과반수 의석에 밀려 견제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감사원이 정치 감사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감사원은 구애받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제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을 경우 국회 추천은 사실상 집권당 즉 정권의 추천이 되고 만다. 지금도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기 전 국회 동의를 받게 돼 있지만 여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는 야당이 반대해도 총리 임명 동의안을 강행 통과시킨다. 김민석, 한성숙 국무총리의 경우가 모두 그랬다. 국회 동의라는 절차가 대통령의 총리 임명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중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장의 국회 동의’도 국회 동의라는 견제 장치가 무력화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회 동의든 추천이든 여당이 과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요식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과반 의석 정당이 국회 장악하면 헛일
결국 대통령 임기제 변경이나 국회 권한 강화를 통해 대통령 권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어디서 오는가? 특정 정당이 과반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하는 데서 온다. 국회는 다수결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딱 세 가지만 예외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필요한 국회의원 제명, 대통령 탄핵 소추, 헌법 개정안 의결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이 세 가지를 빼고는 다수결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국회를 장악해 국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그렇다. 법 왜곡죄 도입·대법관 14명 증원·재판 소원제(사실상의 4심제), 검찰 해체와 중수청 설치 등 사법제도와 형사 절차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 노란봉투법처럼 산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법안을 손쉽게 통과시키고 있다. 야당이나 일부 여론의 반대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소수당의 견제 장치를 무력화하고 다수당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요건 강화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기간 단축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이 그것이다. 이 두 제도는 다수당의 수적 우세에 의한 일방 통행식 국회 운영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 장치가 다수당의 수적 우세에 의해 무력화될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은 국회 권력을 사용해 사법부도 쥐고 흔든다.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유죄 취지 파기 환송 판결을 내린 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또는 자진 사퇴를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 따지겠다며 걸핏하면 국회에 나오라고 강요한다. 김민석 민주당대표는 대법관 임명 제청과 관련해 청와대와 대립하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조희대씨’라고 부르며 물러나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하게 되면 ‘다수당 만능 시대’가 되고 만다. 국회 권력을 그 정당의 권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 앞에서는 사법부도, 검찰도, 군도 ‘을’의 신세일 뿐이다. 대통령조차 국회 권력을 넘어설 수는 없다. 국회 다수당이 여당일 때는 여당의 힘에 기대게 된다. 다수당이 야당일 때는 야당에 발목이 잡혀 국정 운영에 애를 먹는다.
'다수당 만능'이 문제의 핵심
결국 ‘다수당 만능’을 끝내도록 하는 게 해법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야당이 다수당을 견제하고,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를 하게 하고,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다수당 만능 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 핵심은 어느 한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단순 다수제와 소선거구제로 돼 있다.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제도이다. 단순 다수제란 그 선거구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당선되게 하는 제도이다. 단순 다수제와 소선거구제에서는 선거구마다 거대 정당 후보에게 유권자 표가 집중되고, 몇천 또는 몇백 표, 심지어 3~4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게 된다. 호남과 영남 등 지역에 따라서는 어느 한 정당이 '싹쓸이'를 한다. 그 결과 두 개의 큰 정당 즉 양대 정당만 살아남게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같은 정당이다.
그러다 보니 민심과 다르게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실제로 2024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48%, 국민의힘 45.08%로 민주당이 불과 5.4% 포인트 더 높았다. 민심이 서로 엇비슷했다. 그런데 의석수는 전체 300석 중 민주당이 161석, 국민의힘이 90석으로 민주당이 70석이나 더 얻었다. 절반(151석) 이 넘는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기타 3개 군소 정당의 총 의석수는 3석에 불과했다. 2020년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49.91%,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41.45%였으나 의석수는 민주당이 163석으로 미래통합당 84석의 2배에 달했다.
이게 소선구제와 단순 다수제의 구조적 운명이다. 이런 제도가 계속되는 한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얻어 국회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을 맘껏 휘두르는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해결책
만약 소선구제가 아니고 한 선거구에서 3~4명씩을 뽑되 한 정당이 후보를 선거구당 한 명씩만 내게 하는 중대 선거구제라면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여러 정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다당제가 된다. 다당제가 되면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갖기가 어려워진다.
지역구 의석 수를 대폭 줄이고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방법도 있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된다. 정당 간에 득표율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데 의석수는 크게 벌어지는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어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202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이 더불어민주당 26.69%, 국민의힘 36.67%로 큰 차이가 없었다. 비례대표 의석수도 민주당 14석, 국민의힘 18석으로 엇비슷했다. 2020년 총선에도 민주당이 득표율 33.35%에 비례대표 의석 17석, 미래통합당이 33.84%에 19석으로 득표율이 비슷하자 의석수도 비슷했다. 그런데 현재 비례대표 의석은 전체 의석 300석 중 47석에 불과하다. 253석은 지역구 의석이다. 비례대표 의석 수가 워낙 적어 정당 간 의석 수에 별 차이를 내지 않는다. 어느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헌은 국회재적 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그것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은 여야 정당이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20년 총선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그런 결기라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나 비례대표 대폭 확대 같은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못할 게 없다. 그런 개혁은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해도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을까? 과반 의석 정당이 출현해 국회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게 하려면 개헌보다 더 급하고 효율적인 일이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나 대통령이나 개헌만 외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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