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비사업 시장에서 건설사끼리 본입찰에서 맞붙는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수주 경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사비와 금융비 부담이 커지면서 입찰장에서 정면승부를 벌이기보다 수개월 전부터 사업성이 높은 단지를 고르고 조합원 표심을 선점하는 쪽으로 경쟁 방식이 바뀌고 있다.
실제 입찰에서는 단독 응찰이 잇따르는 반면 단지 주변에는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 라운지가 속속 들어서며 ‘장외 수주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약 30조원 규모의 재건축 시장으로 평가되는 목동신시가지가 대표적이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8월 넷째 주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올해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은 약 30조8700억원이다. 그러나 올해 서울에서 이들 건설사가 시공권을 확보한 25개 사업장 가운데 복수 업체가 실제 입찰에서 맞붙은 곳은 압구정5구역과 신반포19·25차, 성수전략정비구역 4지구 등 3곳에 불과했다. 전체의 12%다. 나머지 22곳은 경쟁 없이 시공사 선정 절차가 진행됐다.
사업성이 높은 ‘대어’도 예외가 아니다. 목동6단지는 DL이앤씨가 두 차례 단독 응찰한 끝에 시공권을 확보했고, 공사비 약 2조6100억원 규모인 목동10단지도 현대건설이 두 차례 홀로 입찰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12단지 역시 첫 입찰에서 GS건설만 참여해 유찰됐다.
입찰은 조용한데 목동 곳곳엔 ‘브랜드 라운지’
입찰장 밖 분위기는 정반대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는 현재 2만6629가구에서 재건축 후 약 5만 가구 규모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전체 사업 규모는 약 30조원으로 추산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향후 수년간 확보해야 할 핵심 수주 시장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지난 3월 목동10단지 인근에 이어 5월 7단지 인근에 ‘디에이치 목동 라운지’를 열었다. 대우건설도 ‘써밋 목동 라운지’를 마련해 8·11·14단지 등을 주요 사업장으로 검토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오목교역 인근 ‘아크로 목동리젠시’를 거점으로 6단지를 확보한 뒤 14단지 등 추가 사업장도 살피고 있다.
후발주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2·7·14단지를 주요 목표로 ‘목동 르엘 라운지’를 순차적으로 열 계획이며, IPARK현대산업개발은 11단지를 핵심 사업지로 잡고 이달 말 ‘아이파크 목동 라운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2·4·14단지 등을 살피며 목동 홍보거점 마련을 추진 중이다. GS건설도 별도 ‘자이 라운지’를 준비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5·9·13단지 등 복수 사업장을 검토하고 있다.
한 개 단지를 놓고 경쟁사와 끝까지 싸우기보다는 목동 전체에 브랜드를 먼저 알리고 여러 사업장을 관리하다가 사업성과 승산이 높은 곳을 골라 들어가는 방식이다.
건설사들의 시선은 특히 7단지와 14단지에 집중돼 있다. 목동7단지는 기존 2550가구를 최고 49층, 4335가구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지난 7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데 이어 이달 2일 시공사 선정을 지원할 건설사업관리(CM) 용역 입찰까지 공고했다. 14단지는 재건축 후 5123가구로 목동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업계에서는 이들 두 단지가 단독 응찰 흐름을 깨고 실제 대형사 간 경쟁이 성립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업장으로 꼽힌다.
‘7000만원 이사비’에서 ‘라운지 선점’까지
수주전은 점차 진화 중이다. 2017년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에서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현대건설은 조합원 2292명에게 가구당 7000만원의 무상 이사비를 제시했다. 총 1600억원이 넘는 규모로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가 법 위반 소지를 지적했고 조합은 해당 조건을 삭제했다. 이후 현대건설이 1295표를 얻어 GS건설(886표)을 제치고 시공권을 따냈다. 당시 수주전은 현금성 혜택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20년 반포3주구에서는 경쟁축이 금융으로 옮겨갔다. 삼성물산은 공사비를 포함한 사업비를 연 1.9% 수준으로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대우건설은 사업비 7800억원에 연 0.9% 고정금리를 내걸었다. 후분양과 리츠 등 일반분양 방식까지 경쟁 조건에 포함되면서 단순 현금지원 대신 조합의 금융비용과 분양 위험을 줄이는 전략이 부상했다.
올해 압구정5구역에서는 경쟁 항목이 더욱 촘촘해졌다. DL이앤씨는 3.3㎡당 공사비 1139만원, 공사기간 57개월, 사업비 금리 COFIX+0%, 이주비 LTV 150%, 분담금 최대 7년 유예를 제시했다. 현대건설은 공사비 1168만원, COFIX+0.49%, LTV 100%, 분담금 최대 4년 유예 등으로 맞섰다. 브랜드와 설계를 넘어 조합원이 부담할 금융비용과 사업기간까지 수주전의 숫자가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사비와 금융조건을 앞세운 정면승부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사업성이 높은 지역을 선별해 조합원 접점을 먼저 확보하고 후속 사업까지 노리는 장기전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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