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인공지능(AI) 도입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려면 적용 대상을 명확히 정하고 데이터 관리와 내부 통제 체계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규모 투자보다 측정 가능한 업무에 AI를 우선 적용해 성공 사례를 축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법무법인(유한) 바른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9일 서울 강남구 바른빌딩에서 '2026년 제3회 중견기업 스케일업(Scale-up) 전략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서는 중견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신사업 발굴을 위한 AI 활용 방안과 규제 대응 과제가 논의됐다.
여현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AI는 더 이상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사와 조직 경영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AI가 단순한 업무 도구를 넘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발전하면서 인사(HR)와 정보기술(IT)을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여 교수는 사람과 AI의 역할을 업무 특성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서 요약과 패턴 분석 등 명시적 지식은 AI가 담당하고 법률 자문과 감성적 판단 등 암묵적 지식은 사람이 맡는 방식이다. 의료·법률·국방처럼 위험도가 높은 분야에는 사람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AI 도입 과정에서 데이터 부족과 보안 문제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박홍만 태경그룹 대표는 숙련공의 제조 노하우를 AI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데이터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연구팀과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공정이나 설비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데이터를 생성·분석하는 기술이다.
박상민 YC 전무는 일반 업무에는 공개형 거대언어모델(LLM)을 사용하고 기술 데이터는 폐쇄형 AI 서버에서 처리하는 방식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 표준화와 정보유출방지(DLP) 체계를 강화한 결과 일부 업무 처리 속도가 기존보다 5~10배 빨라졌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AI 도입 절차로 △목표 설정 △전담 조직 구성 △데이터 표준화 △직원 교육을 제시했다. 조직 내부의 거부감과 보안 문제, 투자 대비 수익(ROI)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기술 도입에 앞서 해결할 업무와 기대 효과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AI 규제에 대비한 내부 관리 체계의 필요성도 다뤄졌다. 이의규 바른 변호사는 "AI 활용의 성패는 어떤 도구를 도입하는지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에 따라 기업의 법적 지위와 의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채용이나 대출 심사처럼 개인의 권리와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영향 AI'를 이용하면 위험관리와 설명, 이용자 보호, 사람의 관리·감독 등 강화된 책무가 적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기업이 마련해야 할 실무 장치로는 AI의 허용 용도와 승인 권한을 규정한 이용 지침, 사용 부서와 데이터·오류 이력을 기록하는 이용 대장, 외부 AI 서비스 계약 관리 기준 등이 제시됐다. AI가 입력 데이터를 학습에 재사용하는지와 데이터 보관·삭제 조건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승근 삼정KPMG Solution&AX부문 상무는 중견 제조기업의 AI 전환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기업은 사무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한 뒤 제조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AI·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일부 공정의 운영 시간을 절반가량 줄였다.
이 상무는 "완벽한 한 번을 목표로 하기보다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확한 문제 정의와 조직의 변화 관리가 AI 도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추진단을 꾸리는 방식보다 소수 인원이 짧은 주기로 결과를 내는 실행 방식이 효과적이라고도 했다.
종합토론에서는 AI 활용 초기부터 컴플라이언스를 사업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AI의 입력 데이터와 산출물, 승인 과정, 오류 대응 내용을 기록하고 현업 부서와 법무·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바른과 중견련은 오는 11월 '2027년 지속 성장을 위한 전략'을 주제로 올해 마지막 중견기업 스케일업 전략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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