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 재판소원 도입 등 형사·사법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으로 국내 로펌 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수십 년간 대형 로펌 핵심 경쟁력이던 '검찰 전관'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리는 반면 경찰과 헌법재판소(헌재) 출신의 몸값은 올라가고 있다. 오는 10월 2일 중수청과 공소청이 출범하면 '중수청 전관'과 '공소청 전관'이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수사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선배 격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신들의 로펌행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검찰이라는 단일 창구에 대응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건 하나를 두고도 수사 초기(경찰·특사경)-중대범죄 수사(중수청·공수처)-기소·공판(공소청)-재판소원(헌재) 단계마다 각기 다른 '전관 변호사'가 투입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각 기관의 전관을 영입할 수 있는 대형 로펌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단계마다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국민과 기업이 지불해야 할 법률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경예우' 고위직부터 실무직까지 전방위 영입
형사·사법제도의 변화는 로펌의 인력 영입 시장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국내 주요 10개 로펌(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화우·지평·바른·대륙아주·동인)의 3년 내(來) 인력 영입·전담 조직 신설 현황을 조사했다.
법조계에서 최근 회자되는 말은 '전경예우'다. 대형 로펌들의 영입 대상은 경무관 이상 고위직에서 실제 사건을 지휘한 총경·경정 등 수사팀장급 일선 실무진으로 대폭 넓어졌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최동해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김귀찬 전 경찰청 차장 등 고위직 출신을 포함해 60여 명 규모의 대응 조직을 운영 중이다. 법무법인 광장은 정채민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범죄분석과장을 영입해 전담 대응팀을 출범시켰으며 금융범죄수사대응팀, 가상자산수사대응팀, 영업비밀범죄수사대응팀 등 세분화된 TF 조직을 구성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2021년 대형 로펌 중 처음으로 '경찰 출신 변호사' 중심의 경찰팀을 꾸렸다. 현재 세종은 검찰·경찰 출신 전문가 80여 명 규모의 형사그룹을 기반으로 경찰 수사 대응 전담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대전경찰청장을 지낸 최현 변호사 등을 영입했고, 율촌은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장 출신 한원횡 변호사와 유진규 전 인천경찰청장을 데려왔다. 지평은 경남경찰청 수사부장 출신인 윤외출 고문을 신규 영입해 경찰팀을 강화했다. 대륙아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단계 변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 출신 변호사와 고문을 꾸준히 늘려왔다. 올해도 강북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출신인 김진서 변호사(경찰대 출신)를 영입했다.
법무법인 화우는 지난 8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수사대 중대재해팀장을 지낸 김도경 변호사를 영입했고, 앞선 5월에는 약 20년간 경찰 수사 실무를 이끌어온 김상문 전 서울경찰청 수사심사담당관을 합류시켰다. 특히 화우는 경찰 출신 인재 영입 규모를 최근 3년 사이 9배로 확대하며 초기 경찰 수사 단계 대응력을 강화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경찰대 20기 출신으로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계장 등을 거친 강동필 변호사를 필두로 국가수사본부 초대 중대재해전문관, 일선 경찰서 경제·지능범죄수사팀장 등 현장 수사를 지휘했던 실무형 인력들로 '경찰수사대응팀'을 꾸렸다. 올해에는 경찰대 출신으로 일선 수사팀장과 경찰청 기획 부서를 두루 거친 신은철·신진호 변호사를 새로 영입하며 현장 대응력을 보강했다.
수사·기소 '투트랙' 전략...특사경 출신도 우대
전경예우라고 하지만 검찰 출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광장은 지난해 9월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을 대표변호사로 앉힌 데 이어 김영철·허훈·차호동·홍정연·최재만·천재인 변호사 등 서초동 출신을 연이어 영입했다. 세종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주축으로 한 형사그룹을 운영 중이다. 동인이 최근 2년간 영입한 파트너 변호사 구성에서도 검사 출신이 7명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화우는 강남일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필두로 김영기·김윤후·이성식·임희성 변호사 등을 포함해 검사 출신 20명 규모의 '기업형사대응전략센터'를 꾸렸다. 경찰 전관 시장이 새로 열렸을 뿐 검찰 전관 시장 역시 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맞춰 별도 조직 신설도 잇따르고 있다. 광장은 중수청 개청에 대비해 전문분야별로 모두 100여명 규모의 수사대응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평은 지난 6월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들을 주축으로 '중수청·공소청 대응 준비 TF'를 꾸렸고, 화우는 수사 단계와 공소청 단계를 나누는 '투트랙' 전략을 세웠다.
특사경의 위상 변화에도 로펌들은 반응하고 있다. 지평은 검사의 특사경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응해 고용노동부 중대재해수사팀장 출신 유훈종 전문위원, 공정위 내부거래감시과장 출신 김상윤 변호사, 금감원 가상자산조사국 출신 김태현 변호사, 식약처 차장 출신 김유미 고문변호사 등 주요 특사경기관 출신 인재를 영입했다.
재판소원에 前 헌법재판관·대법관도 로펌으로
지난 3월부터 재판소원이 시행된 가운데 로펌들의 헌재·대법원 출신 영입도 눈에 띈다. 김앤장은 목영준·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소송팀'을 재정비했고, 법무법인 동인은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을 재판소원 TF 팀장으로 앉혔다. 지평은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을 필두로 헌재 위헌 결정을 다수 이끌어낸 박성철 변호사와 부장판사·헌재 연구관을 지낸 사봉관 대표변호사 등으로 '헌법행정팀'을 꾸렸다. 율촌은 지난달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전직 헌법재판관뿐만 아니라 대법관 출신 중량급 인사로 전열을 정비하는 로펌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태평양은 차한성·이기택 전 대법관을, 세종은 민일영 전 대법관을, 화우는 이인복 전 대법관을 각각 재판소원 대응 조직의 간판으로 세웠다.
헌법연구관 등 실무 경력자로 조직 규모를 갖춘 곳도 많다. 태평양은 김경목 전 선임헌법연구관을 비롯해 30여명 규모의 '재판소원 TF'를 꾸렸고, 광장은 헌재 사무처장을 지낸 김정원 변호사를 배치해 '헌법재판팀'을 출범시켰다. 바른의 '재판소원 전문대응팀'은 고일광 팀장을 포함한 5인 전원이 법원·검찰 재직 시절 헌재에 파견돼 헌법연구관으로 실무를 처리한 경력자들로 구성됐다. 대륙아주는 헌재 연구관 출신 김정호 변호사를 중심으로 '헌법소원팀'을 출범시켜 대응하고 있다.
세분화의 비용은 결국 의뢰인 몫
새로운 수사기관이 생기면 그 기관 출신이 다시 로펌의 영입 대상이 된다는 것은 2021년 출범한 공수처가 먼저 보여줬다. 초대 공수처 차장을 지낸 여운국 변호사는 임기를 마친 뒤 법무법인 동인으로 돌아갔고, 공수처 수사3부장을 지낸 최석규 변호사 역시 동인으로 복귀했다. 부장검사 출신 김성문 변호사와 수사1부 출신 최진홍 변호사는 YK로, 수사3부 부부장검사를 지낸 문형석 변호사는 김앤장으로 이동하는 등 공수처에서 수사 경험을 쌓은 검사들이 대형·중견 로펌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겼다.
이는 새로운 수사기관이 출범하면 그곳에서 경력을 쌓은 후 로펌으로 옮겨가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을 보여준다. 법조계의 다음 관심은 중수청이다. 중수청은 수사관 2567명을 포함해 모두 2874명 규모의 거대 조직이다. 공수처에서 나타난 현상이 훨씬 큰 규모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형사 절차가 특사경·경찰·중수청·공소청 등으로 쪼개지면, 의뢰인 입장에서도 사건이 어느 단계에 걸리느냐에 따라 그 단계 출신 전관을 매번 새로 선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 재판소원이라는 사실상 '4심제'가 도입되면서 이를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을 방어하는 데 드는 법률 비용(수임료)이 높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앤장이나 광장·태평양 같은 대형 로펌들이 경찰대 출신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인력을 많이 뽑고 있다"며 "중수청이 출범해 '수사는 경찰·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라는 구도가 확고해지면 수사 단계에서 경찰·중수청 출신 전관에게 수임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교수는 "물론 자산이 많은 의뢰인들이 단계마다 전관을 바꿔가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라 비난할 수 없다"면서도 "문제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그 권리를 충실히 보장받지 못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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