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태의 중남미 포커스] 페루 앞바다 달아오르자 한국 공급망은 식은땀

  • 기후 위기, 이제 복합 경제 리스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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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태, 중남미 전문 전 외교관]
 

 
기후변화의 충격이 지구촌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폭염과 가뭄 속에 대형 산불이 반복되고 있고, 세계 물류의 핵심 통로인 파나마운하도 물 부족으로 선박 통항을 제한하고 있다. 기후의 변화는 이제 환경문제를 넘어 농업과 에너지, 산업과 물류, 재정과 보건까지 흔드는 경제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2026년 다시 강력한 엘니뇨가 나타나면서 중남미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엘니뇨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기온과 해수온이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매우 강한 엘니뇨가 겹치면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같은 극한 기상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충격이 어디까지 번질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의 재난이 오늘날에는 세계 경제를 타고 생산비와 물가, 운임과 납기, 전력 수급과 재정 부담으로 빠르게 전이된다. 중남미의 바다와 안데스에서 발생한 기후 충격이 한국의 공장과 식탁까지 흔들 수 있는 시대다.
 
페루가 가장 긴장하는 이유
 
현재 중남미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가 페루다. 지난 7월 28일 취임한 게이코 후지모리 대통령은 첫 국정연설에서 치안 회복과 함께 엘니뇨 대응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신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자연재해 대응을 중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것은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필자에게도 엘니뇨는 기상학 교과서에서 배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1998년 처음 페루에 부임했을 당시 가장 먼저 접했던 현안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우리나라 원양 오징어 선단은 상당한 입어료를 지급하고 페루 수역에서 조업했지만, 해양환경이 급변하면서 기대했던 만큼 어획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다.

선단에서는 페루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고, 필자도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때 엘니뇨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수산업과 농업, 물가와 국가재정, 경우에 따라 외교 현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페루 앞바다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와 영양분이 풍부한 심층수가 올라오는 용승 현상 덕분에 세계적인 어장을 형성한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용승이 약해지고 플랑크톤과 어류의 분포가 달라진다. 특히 페루 수산업의 핵심 자원인 안초베타 어획이 감소하면 이를 원료로 하는 어분과 어유 생산에도 영향을 준다. 그 충격은 국제 사료 가격과 세계 양식업의 생산비로 이어질 수 있다.
 
바다에서는 어획, 육지에서는 우아이코(Huaico)
 
엘니뇨의 육상 피해는 더욱더 직접적이다. 페루 태평양 연안은 평소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지대이고 그 뒤에는 안데스산맥이 가파르게 솟아 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물과 흙, 바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는 ‘우아이코’가 발생한다. 2017년 연안 엘니뇨 당시 피우라, 툼베스, 람바예케, 라 리베르타드 등 북부 지역은 폭우와 홍수, 우아이코로 큰 피해를 입었다. 도로와 교량이 끊기고 농경지가 침수됐으며 수도 리마에서도 수돗물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필자가 2018년 다시 페루에 부임했을 때도 그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페루 정부는 별도의 재건기구를 설치하고 약 256억 솔(대략 78억 달러) 규모의 국가 재건계획을 추진했다. 자연재해 하나가 국가의 재정과 투자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다. 이번에도 피해가 현실화되면 농수산물 생산뿐 아니라 도로·교량·항만 등 물류망이 함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온과 침수는 뎅기열과 렙토스피라증 같은 감염병 위험도 높인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면 신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 사업에도 재정 부담이 될 수 있다.
 
WMO가 보내는 강한 경고
 
이번 엘니뇨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강도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9월 3일 엘니뇨가 이미 확고하게 형성됐으며 올해 말에는 ‘매우 강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2월까지 지속될 가능성도 거의 100%로 보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역시 올가을과 겨울 매우 강한 엘니뇨가 될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WMO가 경고하는 것은 단순한 수온 상승이 아니다. 한 지역에는 홍수와 집중호우가, 다른 지역에는 가뭄과 극심한 고온이 나타날 수 있다. 피해 규모를 지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식량·수자원·보건·에너지 체계가 동시에 압박받을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한다.
 
칠레는 광물, 콜롬비아는 전력, 파나마는 물류
 
엘니뇨의 충격은 페루에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기후변동이 각국의 산업구조와 결합하면서 서로 다른 경제적 위험으로 나타난다. 칠레에서는 최근 안데스 광산지역의 폭설과 집중호우가 실제 광산 운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카세로네스 구리·몰리브덴 광산은 폭설과 전력공급 차질로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칠레와 페루는 세계 구리 공급의 핵심 국가다. 구리는 전기차와 전력망,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에도 필수적인 금속이다.

콜롬비아에서는 반대로 가뭄이 문제다. 수력발전 비중이 높은 만큼 강수량과 저수지 유입량이 줄면 물 부족이 곧 전력생산과 에너지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파나마에서는 물 부족이 세계 물류의 문제가 된다. 파나마운하는 담수를 이용해 선박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저수지 수위가 내려가면 통항 척수와 적재량을 제한해야 한다. 과거 심각한 가뭄 당시에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LPG를 운송하던 선박이 신속한 운하 통과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한 사례도 있었다.

페루의 수산·농업과 인프라, 칠레의 광물, 콜롬비아의 전력, 파나마의 물류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기후 충격이 식량, 에너지, 산업, 물류, 재정과 보건으로 연쇄 확산되는 복합 경제 리스크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식탁도 이미 페루와 연결돼 있다. 페루산 오징어와 새우류가 한국으로 수입되고 있고 아보카도와 포도, 망고 등 농산물도 들어온다. 특히 페루 북부의 주요 농산물 산지는 엘니뇨 때마다 홍수 피해가 집중되는 지역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어분이다. 페루는 세계적인 어분과 어유 생산국이다. 엘니뇨로 안초베타 어획이 감소하면 국제 어분 가격이 오를 수 있고 그 부담은 우리 양식업의 생산비로 이어진다. 페루 앞바다의 수온 변화가 한국 양식장의 사료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광물의 파급력은 더 크다. 칠레와 페루의 구리 생산이 흔들리면 전기차와 배터리, 전력망과 AI 인프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파나마운하의 통항 차질까지 겹치면 원자재 가격뿐 아니라 운송비와 납기에도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여파가 여기에서 끝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후재난이 장기화되면 농수산물 생산 감소와 물류 차질이 물가를 자극하고, 복구비 증가는 현지 정부의 재정 여력을 떨어뜨리며, 전력 부족은 제조업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감염병까지 확산되면 노동력과 관광, 지역경제에도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도 중남미의 기상이변을 단순한 해외 재난 뉴스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수산물과 핵심 광물 생산지역, 파나마운하 등 핵심 물류 거점의 기상과 생산 동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 위험이 큰 품목은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가능성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지 재외공관과 코트라(KOTRA)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생산과 물류 차질 정보를 우리 기업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식량과 사료, 핵심 광물, 에너지와 물류를 각각 별개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복합 리스크로 관리해야 한다.
 
30년 전 페루가 알려준 교훈
 
1998년 페루에서 우리 오징어 선단 문제를 협의하면서 엘니뇨의 경제적 위력을 처음 실감한 지 거의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연결됐다. 엘니뇨 자체는 오래전부터 반복돼 온 자연현상이다. 자연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위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산업과 식탁으로 다가오는지를 미리 살펴 충격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페루 앞바다의 수온 변화가 우리 양식장의 사료비를 흔들고, 안데스의 폭우와 폭설이 첨단산업의 원가를 건드리며, 콜롬비아의 가뭄이 전력생산을 위협하고, 파나마운하의 물 부족이 한국으로 향하는 선박의 운송비를 높일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그다음 충격이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올해의 슈퍼 엘니뇨 경고를 중남미만의 기상 문제나 단순한 공급망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기후 충격은 식량과 에너지, 산업과 물류, 재정과 보건을 넘나들며 복합적인 경제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는 만큼, 위험의 신호를 먼저 읽고 대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다. 그것이 30년 전 페루에서 경험한 엘니뇨가 오늘 우리에게 다시 주는 교훈이다.

필자 주요 이력

△중남미 전문 외교관 출신 △세바 국제행정 컨설팅 대표 △ 국가 공인 행정사(일반행사, 스페인어 번역 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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