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규약에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전시 당 운영체계를 명문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시에는 정치국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대신해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당 지도기관 구성에 필요한 선거 절차도 생략하도록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주요 간부 임면 뿐 아니라 당원 입·출당과 당 조직 해산까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3일 중구 달개비하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이 지난 2월 제9차 노동당대회에서 개정한 당 규약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개정 규약은 기존 28개 문단으로 구성됐던 서문을 26개 문단으로 줄이고, 본문 60개 조항 가운데 20개 조항을 수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시 관련 조항의 신설이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 전시 당 운영 방식을 별도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정 규약 제15조는 해당 지역과 단위에 새로 임명된 책임일군을 당 지도기관 성원 후보자로 등록한 뒤 전원회의에서 선거하도록 하면서도 “전시에는 선거를 하지 않고 당 지도기관 성원으로 활동하게 한다”고 규정했다. 유사시에는 별도의 선출 절차 없이 당 조직을 가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치국의 전시 권한도 새로 마련됐다. 제27조는 정치국이 “전시에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위임에 따라 당 앞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연구원은 이를 유사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공백을 정치국이 메우도록 한 조치로 해석했다. 평시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치국을 중심으로 국방·군사 지휘체계를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김일기 전략연 평화공존전략센터장은 “전시에 당이 해오던 관행을 노동당 규약에 성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는 유사시 당 중앙위원회를 대체하는 정치국 중심의 국방·군사 지휘체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남·통일노선은 규약에서 완전히 삭제됐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24년 6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한 바 있는데, 이번 개정 규약에서도 해당 부분이 최종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전략연은 북한이 당 규약과 헌법에 ‘적대국’이나 ‘교전국’이라는 표현은 직접 넣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향후 국가 대 국가 방식의 관계 관리나 대화를 위한 공간은 남겨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의 권한도 대폭 구체화됐다. 개정 규약은 김 위원장이 정치국 회의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직접 소집·주재하고 당의 중요 간부를 임면할 수 있도록 했다. 공민을 당원이나 후보당원으로 직접 입당시키고, 중대한 과오를 범한 당원을 출당 시킬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연구원은 “역대 당 규약 가운데 총비서의 권한과 지위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라며, 김정은 유일 영도체계를 뒷받침하는 통치 구조를 제도화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선대 지도자의 상징성은 한층 축소됐다. 2021년 개정 당시 김일성·김정일의 업적과 상징성을 대부분 걷어낸 데 이어 이번에는 서문에 남아 있던 관련 문단도 삭제했다. 대신 “조선노동당은 수반을 중심으로”라는 표현과 김정은 시대의 ‘5대 당건설 노선’을 추가했다.
김인태 전략연 수석연구위원은 “남아 있던 선대의 상징성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명실공히 김정은 노동당 규약의 성격을 갖게 됐다”며 “개정의 핵심은 김정은 영도 체계 강화와 장기 집권에 대비한 전당 강화”라고 말했다.
개정된 당 규약은 당원 입당 연령은 18세에서 20세로 높였다. 북한이 1956년 제3차 당대회에서 전후 당원 확충을 위해 입당 연령을 20세에서 18세로 낮춘 지 약 70년 만이다. 전략연은 실제 북한 주민의 입당 시점이 대체로 20대 이후인 만큼 이를 현실화한 조치라며, 김정은의 딸 김주애의 후계 구도와 이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평가했다.
한편 전략원은 최근 북미대화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넘어 중단 또는 그 이상의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최용환 전략연 부원장은 “북한이 지난 2018~2019년보다 자신의 협상력이 높아졌다고 판단하는 만큼 비핵화를 협상 출발점에서 배제하고 최대한의 양보를 얻으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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