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권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 중 하나는 '지방 이전'이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속도를 내면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까지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오는 4일 총파업을 예고하며 지방 이전 저지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아직 대상 기관도, 이전 지역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금융권은 벌써 술렁이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과 기업, 돈이 수도권으로 계속 몰리는 상황에서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을 거치며 혁신도시가 조성된 것도 사실이다. 수도권 집중을 그대로 둔 채 지역소멸만 걱정하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만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은 '어디로 보낼지'만 정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은 사람과 정보, 네트워크가 경쟁력인 산업이다. 금융회사와 정부 부처, 시장 참여자들이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도 필요하다. 본점 주소만 지방으로 옮긴 뒤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고 주요 회의와 의사결정은 여전히 서울에서 이뤄진다면 막대한 이전 비용을 들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전 대상을 한 묶음으로 보는 접근도 경계해야 한다. 정책금융기관과 금융감독기관은 역할부터 다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기업금융과 정책자금 공급이 핵심이고, 금감원과 예보는 금융시장 감독과 위기 대응이 본업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더라도 업무 특성과 민간 금융사와의 연계 정도, 위기 대응 필요성 등을 따져 이전 방식과 기능 배치를 달리 설계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 몇 곳을 남길 것이냐'보다 어떤 기능을 어디에 두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 향하는 인구 유입은 공공기관 이전이 집중됐던 시기에 늘었다가 2017년 이후 급격히 줄었고, 2023년부터는 순유출로 돌아섰다. 같은 권역 내에서 혁신도시로의 인구 유입마저도 2025년 이후에는 멈췄다. 고용 효과도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범위 역시 제한적이었다. 기관을 하나 옮기는 것과 지역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정치적 안배에 따라 기관을 지역별로 고르게 나눠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1차 이전의 한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금융기관은 지역 산업과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관련 금융회사와 전문인력을 함께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에서 따져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몇 곳을 서울에서 빼냈는지, 어느 지역에 몇 개 기관을 배치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전 기관과 연관된 민간 기업이 함께 움직일 유인을 만들고 직원과 가족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정주 여건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이전이 단순한 주소 변경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산업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주소지만 바꾼다면 정부도, 이전을 반대하는 금융권도 모두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정부가 이전 명단을 확정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어디로 보낼 것인가'가 아니다. '그곳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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