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도 많은 과제가 있다. 그중 시급한 과제를 3가지로 추리라면 비즈니스 규제와 근로 규제, 그리고 대미 통상의 과제를 들 수 있다. 이들 과제를 풀어야만 젊은이들의 일자리, 중국과의 경쟁, 탄탄한 경제안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비즈니스 규제이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들이 한국에서 사업한다면 20~50%의 기업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2022년 아산나눔재단, 2023년 한국경제연구원). 그만큼 우리나라에 비즈니스 규제가 많다는 얘기이다. 지금 3대 메가 특구가 진행 중이고 규제 특례를 도입하고 있다. 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러 차례 전국에 2000개 넘는 경제 관련 특구가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에 규제가 많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조각조각 특구를 만들기보다 우리나라 전체를 규제 없는 커다란 단일 특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무슨 규제를 어떻게 골라 없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아예 제로규제를 베이스로 해서 정말 꼭 필요한 규제만 존치하는 식으로 작업하여야 한다. 벤치마킹할 나라는 많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다른 나라를 참고하듯이 '저 나라는 이 분야에 저런 규제가 없더라'를 연구해서 적용하면 된다. 초기의 시행착오는 각오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다하는 규제 개혁을 이러저런 이유로 우리가 안 하면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최근 일정 규모 이상의 산업단지는 기존 허가와 분리해서 증설 건축을 허용한다고 한다. 잘한 일이고 규제 완화할 것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힘들고 위험이 높은 것은 창업인데 이 창업을 여러 진입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수많은 업역에서 먼저 진출한 고참들이 허가제 등을 통해서 젊은이들의 진입과 창업을 막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별 문제 없이 허무는 칸막이와 새로운 비즈니스, 신참의 참여가 우리나라에서는 번번이 실패한다. 진입 저지를 위한 합리성에서 밀리면 세를 동원하고 정치가 개입한다. 실패한 승차공유(우버택시)가 그렇고 마트에서 구매할 수 없는 아스피린이 손에 닿는 사례이다. 도시에서의 공유숙박은 막혀 있고, 30초 의사 진료를 위해 몇 시간을 대기하는 현실에서 비대면 진료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없어지기는커녕 매일 통과되는 법령과 커져가는 시·군청사, 관공서 건물이 규제의 증가를 말해준다. 세금을 많이 거두면 정부가 커지고 집행부서가 늘고 규제 법령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규제 개혁은 외부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추진하여야 하고 힘을 실어 주어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있다. 규제 부서에 맡겨서는 규제가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한다.
두 번째로 근로 규제이다. 기업들이 호소하는 제일 센 규제가 노동 분야 규제이다. 국제적 추세를 거스르고 우리만 과거로 회귀해서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필요한 분야에서 자발적인 선택으로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수용 가능하지 않은가. 근로기준법(제50조)은 1주 간의 근로시간 상한을 40시간으로 규정하고, 다른 조문에서 노사 합의로 52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다. 2002년 주5일 근무제로 바뀌기 전에는 주 5.5일 근무제였다. 당시 토요일은 반공휴일로 아침에 출근해서 시간을 대충 보내다가 오후 1시쯤 퇴근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토요일의 생산성은 높지 않았지만 주5일 근무제 전환에 대해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사측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증가를, 노동계는 임금 삭감 우려와 노동 강도 강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였다. 주5일 근무제 전환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우려와 달리 한국 경제는 4%대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노동 생산성이 증가함으로써 근로시간 단축을 상쇄하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토요일에 출근해서 피로만 쌓기보다 토요일에 휴식을 취한 후 주중 5일 동안 집중적으로 일한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준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늘리지 않는 대신 연구개발 분야 등 근로 당사자가 원하고 회사 측과 합의하는 경우까지 근로시간을 늘리는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규제로 보인다. 미국 연방법은 전문직의 경우 연장근로시간의 상한 제약이 없어서 주 90시간까지 일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있고 일본도 연장 근로시간의 상한을 통상 월 45시간에서 특별한 경우 100시간까지 확대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대만에서도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 초과근무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체크가 필요한 사항들이지만 이들 나라를 참고해서 우리도 첨단 분야 연구원 등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화이트칼라 예외제도(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미 통상 역량의 강화이다. 최근 우리의 대미 통상 전선이 삐걱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와 창신메모리로 대표되듯이 중국은 우리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데 그간 우리에게 우호적이던 미국이 쿠팡 문제와 플랫폼 법 등 우리에게 불만을 갖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통상·외교를 넘어 군사적인 측면까지 우리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수출에 간접 수출까지 포함하면 미국 시장은 우리에게 절대적이다. 미국이 캐나다에 대한 관세율을 50%로 높였듯이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받아든 15% 대미 관세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온다. 한·미 조선협력인 마스가(MASGA)는 미국 측으로서는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고 양국이 상호 윈윈하는 프로젝트라고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양국 간 협력의 관건은 마스가 말고 제1호 투자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느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국내에는 거액을 투자한다면서 왜 미국에는 투자를 지체하느냐, 11월 중간 선거 결과를 보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더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산단이 중국의 전초기지로 쓰이는 것 아닌가 하고 주목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에 대한 불신은 관세율 인상을 넘어 정치군사적으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북한의 다이렉트 접촉은 한국을 패싱하게 되고 북한과의 교섭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미국은 대미 안보의 방파제 역할을 해온 한국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하게 밀어 붙일 가능성이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쓸 카드는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지고 민주당이 미국 정치를 주도하게 된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
트럼프를 비난한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적당히 들어주면서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통상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다. 정권 초기부터 대미 통상의 큰 축을 담당해온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 본부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뛰어난 능력과 탄탄한 미국 네트워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심각하게 전개되는 통상 전쟁의 와중에 통상외교 역량의 손실까지 발생하였다. 통상역량을 보강해도 시원찮은 상황에 전열에 구멍이 생긴 셈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후임 본부장이 잘 헤쳐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창업과 근로 규제, 대미 통상이 제대로 되어야만 우리 경제의 중요 과제의 하나인 청년 일자리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 다소간 속도 조절이 있겠지만 미래에는 AI가 보편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AI에 쫓기는 현업 고령층은 로봇에 반대하면서 성과급 배분,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 불사를 외치고 있다. 청년들은 창업과 일자리 진입 장벽에 가로 막히고 있다. 청년들에게 로봇 한 대씩을 배당하지 않는 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정답은 규제의 혁파이다. 치열한 국제 경쟁의 성적표는 이만하면 잘했다는 식의 주관식 절대평가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객관식 상대평가이고 졸업 때에나 나올 평균평점이다. 그때 가서 더 잘해 불 걸 그랬다 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케이더블유 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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