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2분기 경제성장률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7%로 추계되었다. 상반기 수출 역시 호조세를 기록하고 연간 1조 달러 달성, 수출 4강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낙관의 중심에는 단연 ‘반도체’가 자리하고 있다. 불과 일 년여 전만 해도 이 같은 반도체 활황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인공지능(AI) 급성장이 불러온 이 전례 없는 호황은 소문난 잔치처럼 주식시장에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하 삼전닉스)는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며 대한민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잔치의 이면에는 왕왕 경계해야 할 그림자와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잘 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이롭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반도체에서 번 돈을 경제사회적 발전에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여러 긍정적인 면을 길게 나열하는 것보다는,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낳을 수 있는 잠재적 문제점과 정치경제적 리스크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대외적 통상 마찰의 우려이다. 오늘날 반도체는 세계적 독과점 품목의 특성을 강하게 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등 소수 기업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90%에 육박한다. 단기간에 설비를 신증설하기 어렵고 공급망 장악으로 가격 결정력이 높다는 점도 독과점의 전형적 특성에 부합한다. 국내 정유산업이 과거는 물론 미국-이란 전쟁의 와중에 석유가격을 놓고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삼전닉스의 호황을 가져온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폭등은 세계적인 '칩플레이션(Chipflation)'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 연관 제품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만의 화살이 한국 등의 반도체 독점력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삼전닉스의 천문학적인 영업이익과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고 국내 특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이 발표되는 것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곱게 볼 리 만무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한국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제1호 투자에 대해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광석화처럼 추진되는 국내의 대규모 투자 결정과 비교될 때 미국의 속내는 어떨까. 최근 미국의 통상 압박 수단은 입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상호관세 제도가 법원의 제동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강제노동 관세와 구조적 과잉생산 관세를 새로운 무기로 꺼내 들고 있다. 미국은 미국 제품에 대한 차별적 대우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규정한 1930년 관세법 338조를 근거로 캐나다에 대해 종전 상호관세율 35%를 넘는 5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강제노동 수입 관세 12.5% 부과를 결정하였고 과잉생산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과잉생산 관세율이 2.5% 넘지 않도록 하여 당초 한·미 합의관세율 15%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다. 우리 측은 시장에서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을 들면서 과잉생산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지속적인 흑자를 보이는 것이 과잉생산의 반증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식 논리대로라면 중화학 제품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과잉생산 국가의 비난을 비켜 가기 어렵다. 지금도 대규모 국내 반도체 생산설비를 보유한 한국이 특정 지역에 막대한 생산설비를 추가로 신증설한다면 과잉생산의 비난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쿠팡 문제나 정보통신망법 개정 논란 등 한국에 대한 불만들을 가중하여, 미국은 언제든 우리에 대한 압박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은 사안별로 각개격파도 시도하지만, 성동격서식으로 엉뚱한 것을 트집잡아 다른 것을 공격하기도 한다. 또, 필요하다면 옛날 통상법까지 꺼내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나라이다. 우리가 반도체 호황에 들떠 있는 사이, 미국이 반도체 패권과 공급망 재편을 목적으로 한국 경제를 압박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과 플라자 합의는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당시 유행했던 말이지만 한국이 제2의 일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반도체 호황의 반대편에 있는 어려운 고용 현실, 즉 청년 실업과 분배의 갈등 문제이다. 반도체와 이를 활용한 AI, 로봇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사람의 일자리와 고용은 급격히 감소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제조업 등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반도체 부문의 막대한 초과세수로 제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M.AX)은 결국 인간의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면하는 고질적인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고 AI와 로봇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 특히 노조의 힘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기술적 소외와 고용 불안에 대한 반대가 격하게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당장 삼전닉스의 성과급 분배 문제를 비롯해, 특정지역 신증설 투자에 대해 노동계는 불만을 품고 있다. 정부가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반도체가 야기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길항작용 현상이다. 반도체가 이끄는 증시의 급등락 속에서 많은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주식시장의 활황은 신주를 발행하는 기업의 자금 조달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일반론으로 구주 매매는 결국 주식투자자 간의 소유권 교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주식에서 거둔 차익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한다면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이라는 우리의 양대 자산시장 간의 자금 흐름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택 등 부동산 시장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기 어려운, 각 나라 고유의 유통 구조와 부의 축적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가구 2주택, 고가주택, 농지 소유 등에 대한 규제는 신중하여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1인당 9억원으로 설정되었던 종부세 하한선은 수십년간의 물가 상승을 거치면서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초고가 주택으로 거론되는 30억원에 육박한다. 과거 종부세 하한선에 걸친 아파트가 지금에 와서 초고가 아파트로 중과세의 대상이 되다면 조세저항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에 대한 규제는 기대했던 부의 형평이나 증시 호황 유지보다는 왜곡된 자산 구조로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서늘한 경고장이다. 대외 통상의 압박에 철저히 대비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가져올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며, 왜곡된 자산시장과 세제 정책의 딜레마를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소문난 잔치는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말로 환호성을 멈추고 냉정한 정책적 통찰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케이더블유 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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