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을 통해 가능성을 입증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이 이제 암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모더나와 미국 머크(MSD)가 공동 개발한 개인 맞춤형 암 치료제 ‘인티스메란 오토진(V940)’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병용요법이 고위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재발 없는 생존기간과 원격전이 없는 생존기간을 모두 유의미하게 개선했다. mRNA 기반 암 치료제가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은 처음이다. 암 정복을 향한 인류의 도전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진 셈이다.
이번 성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암을 공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티스메란은 환자의 종양을 분석해 고유한 돌연변이를 찾아낸 뒤 최대 34개의 신생항원 정보를 mRNA에 담아 투여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면역체계가 암세포의 특징을 학습하고 스스로 암을 찾아 공격하도록 만든다. 동일한 약을 모든 환자에게 투여하던 전통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 맞춤형 치료용 백신’를 만드는 것이다.
치료 효과도 일시적인 기대에 머물지 않았다. 앞서 발표된 임상 2b상의 5년 추적 결과에서는 병용요법이 키트루다 단독요법보다 암 재발 또는 사망 위험을 49%, 원격전이 또는 사망 위험을 59%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임상 3상에는 수술을 마친 2기부터 4기 흑색종 환자 1137명이 참여했으며, 재발·전이 억제라는 주요 평가 목표를 충족했다. 이는 mRNA 기술이 감염병 예방 수단을 넘어 암 치료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과다. 모더나와 머크는 흑색종뿐 아니라 폐암·방광암·신장암 등으로 임상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암 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발표는 주요 결과만 공개한 단계로 구체적인 위험 감소 폭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을 실제로 얼마나 연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체 생존기간도 계속 평가해야 한다. 규제 당국의 허가와 장기간의 안전성 검증도 남아 있다. 환자마다 종양을 분석하고 별도의 백신을 설계·생산해야 하는 만큼 제조 기간과 비용, 품질 관리 문제도 풀어야 한다. 혁신적인 치료제가 고가로 책정돼 일부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의학적 성공이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성과의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mRNA는 설계와 생산을 빠르게 바꿀 수 있고 인공지능, 유전체 분석, 면역항암 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암의 종류가 아니라 환자별 유전적 특성에 따라 치료하는 정밀의료 시대를 앞당길 잠재력이 크다. 수술 이후 남아 있는 미세 암세포를 면역체계가 제거하도록 해 재발과 전이를 막는다면 암 치료의 중심도 말기 환자의 생명 연장에서 조기 개입과 완치율 향상으로 옮겨갈 수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에도 분명한 과제를 던진다. 백신 생산시설이나 위탁개발생산 능력만으로는 미래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 환자의 종양 채취부터 유전체 분석, 항원 선정, mRNA 설계와 제조, 병원 투여까지 연결하는 정밀의료 생태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임상 데이터 활용과 유전체 정보 보호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제에 적합한 허가·심사·약가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기업과 병원, 대학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해야 한다.
암 정복은 어느 한 기업이나 한 가지 기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더나와 머크의 도전은 암을 환자별로 분석하고 면역체계에 공격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더 이상 공상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 위기에서 탄생한 mRNA 혁신의 불씨가 암 치료의 희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단기적인 성과와 유행을 좇기보다 기초연구와 임상, 데이터와 제조 역량을 끈기 있게 축적해야 한다. 암 정복으로 향하는 길은 열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학적 검증과 지속적인 투자, 그리고 혁신의 혜택을 환자에게 공정하게 돌려주는 제도적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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