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연속 경영평가 A등급을 받은 우수 기관에 포상이 아닌 '조직 해체'에 가까운 통폐합안이 날아들자 관료주의적 편의주의가 국가 한의약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진다.
지난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유출된 '국가 혁신시스템 대전환을 위한 R&D 관리 시스템 개편안'에 따라 16개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통폐합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한국한의약진흥원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으로 흡수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산업진흥원의 R&D 관리 기능을 신설 통합기관으로 이관하고 남아있는 산업진흥 역할에 한의약진흥원을 기계적으로 덧붙이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006년 설립된 한국한방산업진흥원을 모태로 한 한국한의약진흥원은 2019년 '한의약육성법' 제13조에 근거해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승격됐다.
수십 년간 국가 보건의료 정책이 철저히 '양방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소외됐던 한의약의 표준화·과학화·산업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별도 법률과 전담 기구를 만들어낸 결과였다.
특히 약 140명의 전문인력을 보유한 한국한의약진흥원은 민간 제약사가 수익성 부족으로 외면하는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 보험한약 제형 개발, 난임 치료 등 공공 R&D 인프라를 전담하며 복지부 경영평가에서 지난 2021년부터 5년 연속 'A등급(우수)'을 받아왔다.
성과와 효율성이 검증된 국가 컨트롤타워를 다시 양방 중심 기관의 하부 부서로 편입시키는 것은 명백한 '역사의 퇴행'이자 수십 년간 축적된 전문 인력과 데이터를 공중분해하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역대 기관장과 한의계 전반의 반발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1대 이응세·2대 정창현 전 원장은 공동 성명을 통해 "규제 체계와 정책 대상이 판이한 기관을 기계적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한의약이 과거에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이번 통폐합 계기로 보건산업진흥원으로 흡수되는 것은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역시 정점식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를 만나 통폐합 논의의 즉각적인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 행정의 심각한 모순과 지방 역차별 논란도 심각하다. 대구 혁신도시에 위치한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마저도 충북 오송재단과 통합된다면 대구·경북 보건산업 전체가 뿌리채 휘청이게 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이만희 의원(국민의힘)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지역 사회의 우려를 전달하며 저지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해당된다.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막대한 국비를 투입해 구축한 대구·경북 거점을 현재는 '운영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대어 손발을 묶는 한편, 광주·전남이나 강원 원주 등 타 지역에는 신규 첨단의료복합단지나 바이오 특화단지를 추가 지정하는 법적 근거를 함께 추진함으로써 기존 거점은 파괴하고 타 지역엔 신규 유치라는 선심성 정책을 펴는 지독한 이중잣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 전통의약 시장은 오는 2027년 약 1094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을 내 놓았다.
반면 국내 한의약 산업은 12조 6000억원으로 세계 시장의 1.8%에 불과하다. 한의사가 전체 의료인력의 20%를 차지함에도 건강보험 진료비 비중이 3.4%에 그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국가 전담기구의 독립성마저 말소한다면 K-MEDI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전문가들은 파편화된 한의약 정책과 R&D 기능을 하나로 모아 복지부 내 한의약정책관실을 '한국한의약청'으로 승격하고 진흥원을 핵심 컨트롤타워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 국가적 실익에 부합한다고 제언한다.
숫자와 성과로 증명된 우수 기관을 관료의 편의를 위해 해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탁상 위 계산기를 뒤로하고 1000조원 시장을 향한 국가 한의약 산업의 미래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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