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저만치 멀어지는 '인간성'을 붙들고 버티는 놀란

‘트로이 전쟁에 쓰였을 것 같은 목마를 상상해서 이미지로 만들어줘’라는 한 문장의 명령어를 입력하면 챗GPT는 약 30여초 후에 제법 그럴 듯한 이미지 2개를 만들어주며 더 나은 것으로 선택까지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쉽고 빨라도 되는 걸까.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화가의 손도 필요 없고 하다못해 ‘포토샵’을 이용한 합성이나 리터칭조차 필요 없는 극단적인 손쉬움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이름과 번호를 다 기억해주는 휴대폰의 기능이 생기면서 숫자를 암기하는 법을 깡그리 잊은 인간들 앞에 AI라는 훨씬 더 고능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떡 하니 나타난 것이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AI 툴을 통해 에세이, 논문, 사진, 그래픽, 영상 등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적당한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그만큼 학업과 업무가 쉬워지고 여유 시간은 많아진다. 이렇게만 보면 항상 휴식을 갈망하는 인간으로선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상 그 여유는 돈으로만 값을 치른 게 아니다. 인간의 배움과 경험 역시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 [사진=IMDB]
영화 '오디세이' [사진=IMDB]
 
AI를 썼다면 1분이면 만들 수 있는 트로이 목마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사람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11m 높이의 실물로 제작했다. 게다가 여러 보도에 의하면 무게가 3.6t에 이르는데 그 목마를 실제로 사람들이 끌도록 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은 포세이돈의 아들로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사이클롭스를 표현할 때도 비슷한 크기의 모형을 굳이 만들었는데 높이가 18m에 달했다고 한다. 식인 거인족을 표현할 때도 키가 130~140cm 정도로 작은 배우와 2m가 훨씬 넘는 장신 배우를 또 굳이 대역으로 써서 종족 간 키 차이를 구현했다.
 
컴퓨터그래픽을 배척하는 것으로 유명한 놀란 감독다운 지독함이다. 아날로그를 향한 놀란의 집착은 필모그래피가 한편씩 추가될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영화 ‘오디세이’는 전체 분량을 IMAX 필름으로 찍은 전세계 유일한 작품이다.
 
놀란은 그만큼 영상 속 인물이나 배경, 효과 등에 ‘물성(物性)’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어린 친구들은 잘 구별하지도 못할 미세한 질감을 살리겠다고, 고집스럽게 여러모로 불편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놀란 감독이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충족시키곤 하는 세계적 거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오디세이’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놀란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마스터피스다.

이런 놀란의 고집을 그동안 ‘뭐 그렇게까지’라는 말을 붙여가며 비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관객들을 구태여 IMAX관으로 불러들이는 그의 작품들을 향한 다소간의 불평불만이다. 그런데 ‘오디세이’를 보고 나면 놀란의 그 집요함을 ‘고인물’의 고집이라 폄하할 수만은 없게 된다.
 
‘제우스의 율법’을 어긴 오디세이의 10년 동안 이어진 죄의식을 굳이 3000년이 훨씬 지난 현대에 새삼 소환한 놀란 감독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것을 ‘죄책감’으로 해석한다.
 
영화 '오디세이' 촬영현장 [사진=IMDB]
영화 '오디세이' 촬영현장 [사진=IMDB]
 
놀란의 ‘죄책감’은 개인적으로 저지른 어떤 죄로 인한 것이 아니다. 적절한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문명의 이기를 ‘회의(懷疑)’ 없이 덥석 받아드는 세태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AI에 명령하면 에세이 한편이 1초만에 뚝딱 쓰여진다. 그 글을 요리조리 다듬어 수정하고 일부의 문장을 고치고 형용사나 서술어를 살짝 바꾸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 2~30분 안에 2000자 정도의 글은 완성시킬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이렇게 완성된 글을 마치 내가 실제로 다 쓴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러는 사이 인간의 사유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모든 판단과 사유, 생각을 AI에 맡기고 나면 인간의 뇌는 뭐를 해야 하나. 더 차원 높은 사유를 위해 더 깊은 상념에 몰두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만사를 ‘숏츠’를 보듯 건성으로 대하게 될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젊은 사람들의 AI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건강한 ‘회의론’이다”

 
최근 어느 한 유튜버와의 인터뷰에서 놀란은 “발전한 기술(AI)이 이토록 빠르게 대중에게 거부되는 현상을 본 적이 없다”며 “모두의 의심이 극도로 강한데,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것은 매우 건강한 회의론”이라고 말했다.
 
1초만에 에세이가 완성되는 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망연자실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쉬워도 될까, 편리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에 선다. 집을 찾아온 낯선 사람을 환대하고 대접하라 했던 ‘제우스의 법’은 강제성은 없어도 누구나 지켰던 신성한 의무였다. 그러니까 ‘제우스의 법’은 야만에 맞서, 인간의 윤리·도덕을 유지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를 함락하고 그 시민들을 학살함으로써 ‘제우스의 법’을 짓밟았다. 이후 신의 노여움을 산 오디세이는 집에 돌아가기까지 10년을 허비했고, 역사적 맥락에서는 ‘청동기 문명’이 붕괴하고 그리스 문자 기록이 급격히 줄어드는 ‘암흑의 시기’를 맞이한다.
 
오디세이가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전쟁에 이긴 대가로 맞은 문명의 몰락을, 놀란은 AI 시대를 맞은 현대에 호출해내 인간에게 ‘회의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오디세이가 그랬듯이 죄의식을 갖기 바랐을 것으로 짐작한다.

칼립소가 주는 로투스의 쾌락과 안락함으로 7년이나 망각 속에 파묻혀 마치 신처럼 살았던 오디세이가 자신의 죄를 직면하고 죄책감을 끌어안은 채 인간으로 돌아가기를 결정했듯,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붙들고 버텨주기를 놀란은 희망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 사진IMDB
영화 '오디세이' [사진=IMDB]
 
놀란 감독은 AI를 가리켜 “그리스인 병사가 안에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놀란은 AI를 ‘투명한 목마’로 빗댔다. 트로이 시민은 목마 속 병사들의 존재를 알지 못해 속수무책 속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아는 목마를 눈앞에 둔 것이다.
 
아예 배척해야 할지, 모른 척 속아 넘어간 채 들여보낼지, 아니면 현재에 맞는 ‘제우스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들과 조화시킬지, ‘투명한 목마’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를 마침내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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