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경남 양산의 최고기온이 섭씨 42.5도까지 올랐고, 수도권도 40도에 이르렀다. 제트기류 정체, 해수면 온도 상승 등 지구적 환경 변화로 인한 것이므로 올여름의 열기는 이상 기후가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 한다. 온도의 기준으로 삼는 섭씨(攝氏·Celsius, ℃)는 1기압 상태에서 물의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하여 그 사이를 100 등분한 온도 단위다. 스웨덴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중국에서 그의 성씨를 한자로 ‘섭이수(攝爾修斯)’라 음차하면서 '섭씨(攝氏·셀시우스 씨가 만든 온도 체계)'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된 이 기준은 상호 간 약속과 합리성을 인정받아 오랜 기간 사회적 질서로 자리 잡았다.
대기의 온도는 물리 법칙에 따라 오르내리지만 사회적 갈등의 온도는 제도 설계와 정치적 선택에 따라 오르내린다. 올여름 대기의 온도만 오른 것이었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겠지만 우리 사회는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잃어버린 채 깊은 갈등으로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갈등의 열기 중심에 사법체계의 급격한 변화가 자리한다.
보완수사권 폐지로 검사의 수사권은 사라졌다.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개혁의 취지 자체는 타당하다. 그동안 검찰 권력이 비대해진 데는 민사로 해결할 문제가 형사절차에 의존한 것이 한몫했다. 우리 민사소송법 체계에서는 피해자가 거의 모든 입증을 해야 하지만 입증의 도구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서 피해자의 구제를 검찰 수사에 많이 의존했다. 하지만 검찰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민사적 피해 구제 수단에 대한 보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바탕으로 한 피해자 구제의 생태계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였음에도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최근의 공방은 합리적 토론이 발붙이기 어려운 진영 논리의 영역으로 굳어져 버렸다. 피해자를 위해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좀처럼 힘을 얻지 못했다. 개혁의 명분 뒤에는 실질적 피해자인 국민의 삶이 걸려 있다. 제도적 선의나 정치적 명분을 떠나 정작 피해를 본 국민이 갈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은 이 갈등이 쉽게 식을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사법 절차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근래 시행된 법왜곡죄 역시 갈등의 온도를 높이는 또 다른 진원이 되고 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시행 4개월여 만에 판사 529명이 법왜곡죄로 고소·고발을 당했다고 한다. 사례를 보면 재판장이 쟁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석명을 구하거나 답변서 제출을 명한 것, 법정 내 질문을 제지한 것까지 고소 사유가 되었다. 무분별한 고소·고발은 무혐의나 무고죄 처벌 등으로 걸러지겠지만 문제는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판관을 고소·고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사법 판결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지면 법원은 갈등을 마감하는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생산하는 '환승역'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법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차라리 AI가 낫겠다'는 목소리로도 이어진다. 형사재판 결과를 전하는 기사 댓글에는 재판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올리는 '판사를 AI로 대체해야 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농담 삼아 올린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제법 진지해 보이는 글도 있다. AI를 도입하면 합리적 판결이 나서 갈등이 해결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챗GPT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LM)은 정보를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사실과 개념을 범주화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모든 과정에는 수많은 가치판단이 개입한다. 하지만 AI의 판단에는 공적 논의나 사회적 합의가 없고, 거대 기술기업 내부의 설계와 운영 기준에 따라 처리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주권자는 의사 결정 주체가 아니라 기술기업 시스템이 제시하는 결과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결국 'AI 판사'라는 솔깃한 몽상은 갈등을 해소하는 합리적 열쇠가 아니라 사법적 판단의 주체성과 책임을 민주적 정당성 없는 개별 기업의 손에 넘겨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지구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탄소 저감 정책은 버튼을 누르면 즉시 시원해지는 에어컨은 아니다. 하지만 치솟는 온도계의 상승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어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된다. 우리 사회는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진영 간 대립을 동력으로 삼으면서 갈등이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법개혁이 합리적 토론 대신 진영 팬덤의 소재로 소비되어 결과 제대로 된 보완책 없는 검사 수사권의 완전 폐지, 법왜곡죄의 도입에 이르렀다. 이것은 사회 갈등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더 격한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갈등의 온도를 낮추려면 정치가 먼저 그 갈등을 부추기는 편향적 팬덤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합리적 기준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이 비이성적인 폭염은 결코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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