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검진을 받을 때 “환자분, 여기 충치가 3개나 있네요”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으신가요? 거울을 아무리 요리조리 들여다보아도 내 이빨은 하얗고 깨끗하기만 했는데 말이죠. ‘치과의사가 과잉 진료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충치는 ‘검은색 구멍’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치과를 찾는 환자들을 가장 위협하는 충치는 하얀색이나 노란색 충치라는 사실,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충치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치아의 겉면(법랑질)은 단단한 칼슘과 미네랄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세균이 먹고 산(acid)을 만들어 내면, 치아의 미네랄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충치(치아우식증)의 시작입니다. 충치의 색깔은 충치가 '지금 진행 중인지', 아니면 '잠시 멈췄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검은색 충치는 ‘정지성 우식’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지성 우식’이란 충치가 생기다가 입안 환경이 깨끗해지거나 타액 속에 있는 미네랄 덕분에 충치의 진행이 멈춘 상태입니다. 이때 치아 표면에 음식물 착색이나 타르 등이 쌓이면서 검게 변하게 됩니다. 즉, 검은 충치는 오히려 침묵하며 잠들어 있는 ‘착한 충치’일 확률이 높습니다. 통증이 없고 진행되지 않는다면 치료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경과만 관찰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하얀색이나 노란색 충치가 ‘활동성 우식’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아를 빠르게 녹이고 있는 ‘진짜 위험한 충치’입니다. 치아 표면의 미네랄이 빠져나가고 난 후에는 매끄럽던 치아가 푸석푸석한 분필처럼 변하면서 처음에는 ‘하얀 띠(White Spot)’ 형태로 나타나고, 여기서 충치가 더 깊어지면 치아 속 부드러운 상아질이 드러나면서 ‘노란색’ 또는 ‘갈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검은 충치는 거울로 보아도 쉽게 눈에 띕니다. 그래서 환자 스스로도 “아, 치과 가야겠다”라고 인지하기 쉽죠. 하지만 하얗거나 노란 충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발견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첫째, 이런 충치들은 기존의 건강한 치아 표면의 색깔과 충치의 색깔이 유사하기 때문에 치아의 씹는 면이나 겉면에 생기더라도 일반인의 눈으로는 충치인지를 거의 구분할 수 없습니다.
둘째, 치아와 치아가 맞닿는 면의 사이(인접면)에 생기는 충치는 특히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엑스레이를 통해서만 진단이 가능합니다. 셋째, 사람의 치아는 겉면(법랑질)은 단단해서 충치가 생겨도 겉으로는 구멍이 작게 나지만, 속면(상아질)은 무르기 때문에 좁은 겉면 구멍에서 시작해서 내부로는 마치 동굴주머니처럼 충치가 넓고 깊게 파고듭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충치가 생긴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치아 속에서 노랗게 녹아내리다가 치아가 툭 깨지고 나서야 발견되거나 심한 통증으로 치과에 와서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까맣지 않으니 괜찮겠지" 하고 방치하다가, 어느 날 치과에 오면 이미 인레이 치료나 신경치료가 필요한 단계로 넘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충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증 없이 시작될 수 있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습니다. 세균이 당분을 분해해 산을 만들고, 그 산이 치아의 미네랄을 조금씩 녹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됩니다. 타액과 불소는 치아를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재광화를 돕습니다. 우리의 치아는 이처럼 '탈회'와 '재광화'를 반복하며 살아남기 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까만 충치만 충치라는 오해에서 벗어났다면, 이제는 숨은 충치까지 똑똑하게 예방하고 관리할 때입니다. 먼저 탄산이나 단 음식의 섭취 횟수를 최소로 하세요. 먹고 싶다면 한 번에 왕창 먹어두는 편이 몇 차례에 나누어 먹는 것보다 치아에는 더 유리합니다. 음식물 섭취 후에는 불소 치약을 발라 꼼꼼히 칫솔질을 한 이후에 치실과 치간 칫솔 사용을 루틴으로 습관화하세요. 그리고 치과에는 아프지 않더라도 6개월~1년에 한 번 꼭 방문해서 검진을 받으십시오.
치아는 우리 몸에서 스스로 회복하려는 능력을 가진 소중한 조직입니다. 하지만 그 능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작은 습관은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차이를 만듭니다. 아프기 전에 살피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관리하는 것. 충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때는 까만 충치가 눈에 띄어서도 아니고, 치아가 아파서도 아닌, 정기검진 시간이 되어서 점검 차 온 때입니다.
서울대학교 치의학 전문대학원 석사
보건복지부 통합치의학 전문의
현 치과의사 겸 의료 전문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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