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7일 발표한 ‘2025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매우 무겁고도 복합적인 과제를 던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은 ‘보수와 진보 간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2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계층 갈등(2.9점)이나 노사 갈등(2.8점)보다 높은 수치다. 흥미로운 점은 주관적 이념 성향에서 자신을 진보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7.1%로 전년보다 2.7%포인트 늘어난 반면, 보수층은 29.6%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지형은 진보 쪽으로 이동했지만,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30.3%로 늘었고 ‘분배가 중요하다’는 응답(31.2%)은 1년 새 5.4%포인트나 감소했다. 진보적 성향을 띠면서도 정작 경제 정책에서는 실리적인 ‘성장론’을 선택하는 역설적 여론이 확인된 셈이다.
이처럼 이념 성향과 경제적 요구가 엇갈리는 현상 이면에는 오늘날의 엄중한 사회·구조적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 기조, 국가 잠재성장률 하락이 현실화되면서 "나눠줄 파이(Pie)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존 본능적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복지와 분배를 통한 양극화 해소’가 진보 진영의 핵심 기치였다. 그러나 청년 실업 심화와 내수 부진을 겪으면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우선 경제의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성장 우선론’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것이다.
이 같은 경제적 생존 위기는 역설적으로 이념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간 극단적 대립은 단순한 정책적 견해 차이를 넘어선 지 오래다. 정치권이 진영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고, 미디어와 유튜브, SNS가 이를 증폭시키는 '정치적 양극화'가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대화와 타협을 상실한 채 맹목적인 적대감만 남은 이념 갈등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으며, 연금·노동·교육 등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구조개혁 과제를 표류하게 만들고 있다. 이대로 갈등이 지속된다면 저성장 기조 속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지고, 진영 간 반목만 깊어지는 '파편화된 각자도생의 사회'가 도래할 뿐이다.
결국 돌파구는 성장의 온기가 분배로 이어지고, 분배가 다시 성장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적 성장 모델'을 정립하는 데 있다. 이제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실태조사에 나타난 민심, 즉 '성장을 통한 미래 동력 확보'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조화롭게 담아내는 실용적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되,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보듬는 포용적 성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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