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敵에서 파트너로? 美의 이란 방정식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미국과 이란은 지난 6월 19일 4개월에 걸친 상호 파괴와 소모적 전쟁을 끝내고 종전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에 전격 서명했다. 지루한 협상 중에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이란에서는 개전 당일 사망한 알리 하메네니 최고 지도자 장례식에 1000만명이 운집하면서 승전 기념일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숨 고르기 국면에 들어갔지만 워낙 상호 불신이 뿌리깊어 신뢰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협상의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최종안 도출을 위한 줄다리기와 크고 작은 국지전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양해각서 14개 항 내용이 파격적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란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된 결과라 내외신 대부분이 "이란의 승리" "미국의 양보"로 평가하고, 공동 전쟁 수행자인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내 트럼프 지지세력인 MAGA 그룹들조차 "전쟁패배" "배신"이라는 표현으로 충격과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양보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1년 동안 보여줬던 이해하기 힘들었던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고 미국 대외정책의 제자리 찾기란 평가다. 이번 이란 전쟁 과정에서 20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업료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뼈저린 두 가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첫째는 ‘악의 축’ ‘테러 지원국’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항복 아니면 궤멸의 대상으로 여겼던 이란 신정정권이 보여주었던 놀라운 저항정신과 노련한 외교술이었다. 이란 행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 강경세력과 일사불란하게 강온 역할을 조화롭게 구사하면서 폭격 대신 ‘외교 우선’이라는 국제규범을 내세우며 주권국가로서 자존심과 품격을 잃지 않았다. 이는 글로벌 공감대와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시간이 흐를수록 이란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무모한 지상전이나 전면전으로 이란을 회복 불능의 폐허 국가로 만드는 대신 그를 끌어당겨 중장기적인 미국 국익의 파트너로 안고 가는 합리적 정책 변화를 선택했다.
 
둘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정책에서 벗어나서 거리두기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건국부터 오늘날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유지해온 ‘영혼의 동맹’ 관계가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에는 회의적이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의 확신에 찬 강력한 설득이 트럼프 대통령을 이란 전쟁에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전쟁 과정에서 이란의 정권교체는커녕 내부 여론의 역결집, 놀라운 저항 능력, 파괴된 군사시설에 대한 예상 밖 빠른 회복력은 미국 전략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서방 세계까지 돌아서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모한 전쟁을 계속하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종전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철저히 배제하고 미국과 이란이 전격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는 배경이다.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내각의 책임 있는 장관이 미국 측 협상 대표단장인 밴스 부통령을 ‘인간말종’이란 입에 담지 못할 거친 표현을 내뱉고, 유대인 미국 협상 책임자였던 재러드 쿠슈너에게 까지 ‘배신자’란 딱지를 씌우면서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한 불만을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양해각서 14개 중 제1항인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중동 전선에서 전쟁 종식 합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최대 규모의 레바논 공습을 계속하는 것이다. 현재 무기 3분의 2 정도를 미국에서 공급받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엇박자를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향후 중동 정책에서 이스라엘에 절대 의존해 왔던 미국의 중동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이란과 ‘적대적 공생’에서 ‘협력적 공생’으로 관계를 재설정하는 일일 것이다.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양국의 14개 합의안에 3000억 달러라는 기하급수적인 투자를 이란에 쏟아붓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GCC 6개 산유국 인구(자국민 기준) 모두보다 3배 규모인 9000만명의 인적 자원을 갖고 있고 원유 생산량 세계 4위, 천연가스 세계 2위인 자원 부국에 중동-이슬람권에서 드물게 민주적으로 선출권력을 배출하면서 1200년 페르시아 문명권의 후예로서 품격과 교양을 가진 이란을 미국 경제권으로 편입하여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상은 비즈니스 마인드의 결정체 같다. 미국의 대이란 정책 변화 시도는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2015년 JCPOA협정이 그 신호탄이었다. 민주화, 인권, 여성 차별, 권위주의 정치체제, 교양과 품격에서 글로벌 수준에서 크게 존중받지 못하는 아랍 산유국들과의 경제적 협력의 한계와 불편함보다는 가장 서구 가치에 부합할 수 있고, 중동 최대 시장 규모인 이란을 서구 경제체제로 끌어들여 윈윈하면서 메가 시너지를 얻겠다는 것이었다. 오바마 지우기에 나선 트럼프로서는 2018년 다시 이란을 강한 악의 축으로 되돌려 놓았지만 이번 전쟁을 기화로 비즈니스 협상가 기질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전략 변화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약화되는 Pax-Americana 시대에 미국의 이란 끌어안기는 전략적 선택의 필연적 방향으로 보인다.
 
아랍 산유국들의 정책 선회 움직임
 
한편 이번 전쟁에서 역설적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걸프협력국 아랍 6개국이다. 미군 기지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을 자국에 유치한 이유로 이란의 집중 보복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군사적 보호가 안보자산의 확대보다는 오히려 리스크가 된다는 처절한 교훈을 얻은 셈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미국 무기체제에서 벗어나거나 미국을 등질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미국과의 안보 협력의 수준이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안보 리스크를 줄이면서 국방 예산을 절감해 미래 경제 비전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오랜 역사적 앙금이나 이번 전쟁으로 인한 적의감의 고조로 양 진영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 구축은 쉽지 않겠지만 “차가운 평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실리적 외교 노선을 강화할 전망이다. 나아가 걸프협력국 사이에도 단일대오가 무너지면서 각자도생의 상이한 정책 방향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선 아랍에미리트가 OPEC에서 탈퇴하여 독자노선을 선언하면서 미국-이스라엘-이집트-아랍에미리트-인도를 잇는 새로운 해상안보벨트 구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도 이해관계에 따라 최상의 국익 방향을 정할 것이다. 이란-미국의 중재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오만도 이란과의 관계를 대폭 개선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통제를 위한 이란과의 공동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들의 또 다른 중요한 경제전략 변화는 경제적 숨통인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원유 수송로 개발과 구축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미 걸프해의 주베일과 서부 홍해의 얀부를 연결하는 1200㎞의 동서 파이프 라인을 풀 가동하기 시작했고, 아랍에미리트는 호르무즈 내해 하브샨과 외항 푸자이라 사이에 360㎞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호르무즈 통과를 피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이라크도 최근 걸프해 쪽 하디사와 요르단의 아카바를 연결하는 1154㎞의 원유 수송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파이프 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파이프라인 수송에 한계를 가진 천연가스 유통은 당분간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전망이다. 특히 LNG 수출의 93%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해 왔던 카타르나 유로 수송로를 갖지 못한 쿠웨이트와 바레인 등은 또 다른 중장기적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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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짜는 우리의 대중동 경제전략
 
그럼 식량 생산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비료용 요소 43.7%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중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은 어떤 스탠스와 전략으로 가다듬을 것인가?
우선 한국-GCC 협력 관계의 틀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GCC 영토내 미군 주둔시설들이 안보 우산의 안정감보다는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경험하게 되었다. 당장 미국과의 안보협력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란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안보리스크를 줄여야만 국가 미래 비전 프로젝트가 비로소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GCC 국가들 간 패키지 협력 모델에 대한 전면적인 재설정이 필요하다. 특히 GCC와의 방산 협력에서 이란이나 튀르키예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이번 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 GGC 국가들 간에도 강한 이견과 정책 노선의 차이가 노정됨으로써 보다 통찰력 있는 국가별-품목별-기술적-단계별 협력 어젠다가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기존 군사-기술 협력의 틀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양국 관계를 미국-이란 관계 개선의 추이에 따라 재조정해 나가는 단계적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미국과 이란 간 대규모 경제 협력 시대를 대비하여 이란 관리 전략을 본격화하고 그동안에라도 공공 외교나 민간 교류를 지원하고 상시적인 채널을 풀 가동할 필요가 있다. 학술교류, 문화예술언론계 교류와 협력, 고고학 공동발굴, 페르시아 문화 속의 한국학 관련 사료 발굴, 실크로드 교류 스토리를 이용한 양국 문화 콘텐츠 공동 제작 등을 제안한다.
 
 필자 주요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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