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의 유통맵] '빠작' 소리에 지갑 열린다…장난감서 디저트된 '왁뿌' 열풍

  • 초콜릿 겉막 깨뜨리는 케이크·생크림빵 잇달아 등장

  • '빠작' 소리와 촬영 재미 앞세워 1020 소비자 공략

 
[사진=인스타그램]
[사진=인스타그램]

매끈하고 화려한 케이크 겉면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깨뜨린다. 빵을 포크로 찌르는 대신 숟가락으로 사정없이 두드린다. ‘빠작’하는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단단했던 껍질이 갈라지면 그제야 숨어있던 크림과 빵을 맛본다.
 
최근 베이커리와 디저트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이다. 빵을 조심스럽게 썰어 먹는 대신 일단 부수고 보는 이 기묘한 유행, 이른바 ‘왁뿌(왁스 부수기)’ 열풍이다. 촉감 완구에서 출발한 왁뿌가 식품으로 옮겨오면서 소비자의 눈과 귀까지 겨냥한 새로운 디저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왁뿌는 말랑말랑한 촉감 장난감 표면에 촛농(왁스)을 두껍게 코팅한 뒤 이를 손으로 꽉 쥐어 깨뜨리며 노는 놀이 문화에서 출발했다. 시각적 쾌감과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한 이 장난감의 문법은 최근 유통·식품 시장으로 고스란히 이식됐다. 소금빵이나 케이크 겉면에 두꺼운 초콜릿이나 설탕 코팅을 입혀 장난감과 똑같은 ‘파괴의 재미’를 구현해 낸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CJ푸드빌 베이커리 뚜레쥬르의 ‘아그작 케이크’다. 지난 3월부터 뚜레쥬르 본점과 강남직영점에서만 선보이고 있는 이 제품은 과일 모양의 초콜릿 껍질 안에 무스와 과육을 채웠다.
 
아그작 케이크는 소셜미디어에서 ‘왁뿌 장난감’ 영상이 유행하던 시점인 5월 이후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일부 매장에서는 판매 시작 전부터 대기 줄이 생겨 평일에도 준비 물량이 30분 안팎에 소진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뚜레쥬르는 복숭아·망고·피스타치오에 이어 레몬과 멜론으로 제품군을 넓혔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얼그레이 크림, 레몬 커스터드, 귤 원물을 담은 ‘왁뿌 탱글탱귤 브레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편의점도 발 빠르게 참전했다. 편의점 CU가 연세유업·하트티라미수와 협업해 내놓은 ‘깨먹는 하트 생크림빵’은 빵 위 초콜릿 코팅을 두드려 깨는 방식이다. 출시 6일 만에 냉장 디저트 매출 1위에 올랐고, 일주일 만에 누적 판매량 15만개를 넘겼다.
 
맛과 원재료뿐 아니라 ‘톡 치고 깨먹는다’는 행동을 상품 콘셉트 전면에 내세운 것이 단기간 판매로 이어진 셈이다. 개인 카페와 베이커리에서도 소금빵 겉면에 초콜릿을 굳힌 ‘왁뿌 소금빵’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사진CJ푸드빌
[사진=CJ푸드빌]

 
소리·단면 숏폼 타고 확산…소비자가 새로운 광고 채널로
 
이처럼 왁뿌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숏폼에 최적화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맛과 향은 화면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초콜릿 막이 갈라지는 장면과 ‘와그작’ 하는 소리는 몇 초만에 제품의 특징을 보여준다. 소비자는 먹기 전 영상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이를 본 다른 소비자가 다시 제품을 찾는다. 상품을 구매한 사람이 동시에 광고 채널이 되는 구조다.
 
기존 디저트가 완성된 외형과 맛을 앞세웠다면 왁뿌는 소비자가 직접 개입해야 비로소 상품의 특징이 완성된다. 업계 관계자는 “손으로 누르고 숟가락으로 두드리는 행동이 더해지면서 디저트를 먹는 과정 자체가 놀이가 된다”며 “단순히 제품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고 이를 기록하려는 소비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변형하는 ‘내시피(내 레시피)’ 문화도 같은 흐름이다. 투썸플레이스의 ‘떠먹는 아박’은 내시피 문화와 맞물리며 지난달 1~21일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6배 늘었다. 지난 5월 선보인 크런치 아박 2종도 누적 판매량 40만개를 넘어섰다. 깨뜨리든, 붓든, 얼리든 제품을 변형하는 행위 자체가 구매 동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식품업계로서는 이런 상품이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한 번의 소리와 단면만으로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고, 소비자가 만든 콘텐츠가 추가 노출을 일으킨다. 프랜차이즈는 일부 점포에서 반응을 살핀 뒤 맛과 판매처를 늘리고, 편의점은 전국 점포망을 활용해 온라인 유행을 빠르게 대량 판매로 전환한다.
 
유행의 출발점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해외 유명 디저트나 셰프의 레시피를 국내 업체가 재해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왁뿌는 문구점 촉감 완구의 놀이 방식이 대형 베이커리와 편의점 신제품으로 옮겨온 사례다. 업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소셜미디어에서 확인된 반응이 식품 기획과 출시를 앞당기는 모습이다.
 
다만 확산 속도가 빠른 만큼 수명도 짧을 수 있다. 비슷한 모양과 방식을 적용한 제품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소비자의 관심은 금세 다른 소재로 옮겨간다. 초콜릿 코팅이 여름철 온도에 녹거나 배송 중 먼저 깨질 수 있어 냉장 유통과 포장 비용도 늘어난다. 겉막이 너무 두꺼우면 먹기 불편하고, 얇으면 기대한 소리와 식감을 내기 어렵다는 품질관리 문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디저트 시장에서는 맛뿐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고 촬영할 수 있는 요소가 제품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다만 숏폼을 타고 뜬 제품은 유행 주기도 짧은 만큼 화제성을 재구매로 이어가려면 맛과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CU가 단독으로 출시한 연세우유와 하트티라미수의 협업 상품인 ‘깨먹는 하트 생크림빵’. [사진=CU]
편의점 CU가 단독으로 출시한 연세우유와 하트티라미수의 협업 상품인 ‘깨먹는 하트 생크림빵’. [사진=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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