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의 폭발적인 호황으로 인해 막대한 규모의 초과 이익과 이에 따른 초과 세수 처리를 두고 나라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채를 갚자, 기초과학기술에 투자하자 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더니 미국 앤트로픽의 ‘미토스’나 오픈AI의 최고위 모델에 대응할 만한 프론티어급 독자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에 전격 투입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관계 부처가 즉각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량 확보 계획은 결정된 바 없다며 해프닝에 그쳤지만 과연 어디에 이 돈을 써야 할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이 거대한 재원을 과연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최상위 AI 모델의 해외 접근을 일시 차단했던 이른바 ‘미토스 쇼크’에서 보듯, 프론티어급 AI 모델과 AI 주권(소버린 AI)은 이제 단순한 기술의 영역을 넘어 국가의 안보이자 전략자산이 됐다.
반도체 하드웨어로 벌어들인 달러를 소프트웨어 및 미래 신성장 동력에 재투자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지극히 타당하다. 원천기술을 쥐지 못하면 빅테크의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 역시 일리가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국가적 자산의 사용처를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조율하거나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초과 세수라 해도 한계가 있다. 어느 곳에 써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적 재원의 활용 방향을 놓고 벌이는 대대적이고 폭넓은 의견 수렴이다. 정부는 초과 세수의 정확한 규모와 재정 여력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과학기술계·산업계·학계는 물론 재정 전문가와 시민 사회까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혁신 투자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재정의 둑을 단단히 하는 건전성에 집중할 것인지, 혹은 이 둘의 황금비율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거시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미래 투자를 선택한다면 GPU 인프라 집중과 같은 단기 전술을 넘어, 기초과학과 인재 양성이라는 지속 가능한 전략에 어느 정도의 무게추를 둘지도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찾아온 이번 초과 세수는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소수의 관료나 특정 이해관계자의 시각으로 재단해 소비해 버린다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정부는 ‘결정된 바 없다’는 해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귀중한 재원을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일방통행식 정책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출된 이정표야말로,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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