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인 도라야키(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일본식 전통 단팥빵)를 팔며 근근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76세 할머니 도쿠에(키키 키린)가 찾아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며 요청하지만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그의 굽은 손을 본 센타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한다. 그런 센타로에게 도쿠에는 “내 손이 불편하니 시급을 더 적게 줘도 된다”며 자신이 만든 팥소를 먹어보라고 넘긴 뒤 발길을 돌린다. 센타로는 도쿠에가 만든 팥소를 맛보자 처음 먹는 맛에 눈에 뜨였다. 센타로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시중에 판매되는 팥소를 쓰고 있었는데, 도쿠에는 팥을 직접 고르고 쑤는 과정 등을 거쳐 정성 들여 만든 달콤한 팥소로 최고의 도라야키를 만들어 보인다.
달라진 도라야키 맛에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하고 가게 앞은 도라야키 맛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로 문정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어느 날 도쿠에의 손에 얽힌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가게는 위기를 맞는다.
도쿠에는 사실 한센병 환자다. 한센병은 나균(Mycobacterium leprae)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으로. 주로 피부, 말초신경과 눈, 코 점막 등에 발병한다. 전염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에는 손과 발, 코 등이 변형되는 증상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힌센병을 두려워하며 환자들을 격리시켰다.
특히 20세기 일본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철저히 사회와 분리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국립 요양소에 강제로 이들을 격리했고 평생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병이 완치됐다 해도 사람들 사이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환자들을 배척했던 사회로 돌아가긴 더더욱 어려웠다.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이 제한됐고 취업 등 사회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일본의 이러한 강제 격리 정책은 1996년에야 폐지됐지만 편견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도쿠에는 굽은 손은 한센병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가 만든 팥소에 감탄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가 한센병 환자였다는 사실에 등을 돌린다. 결국 도쿠에는 다시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를 괴롭힌 건 병으로 인한 불행이 아닌 그를 괴물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삶을 사랑하는 것
센타로 역시 사연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도라아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과거 한순간의 잘못으로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낸다.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담배를 피는 시간이다. 센타로에게 세상은 곧 사라질 담배 연기처럼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 센타로에게 도쿠에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팥을 삶는 일을 ‘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팥의 소리를 듣고, 향을 맡고,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도쿠에는 말한다. “팥에게 귀를 기울여야 해.” 이 말은 어쩌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이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익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 말이다.
도쿠에는 자신이 피해자라며 울부짖지 않는다.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따뜻한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이는 왠지 이토록 삶을 사랑하는 도쿠에가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어.”
아마 도쿠에는 격리된 동안 자신만의 팥을 만들며 자신의 인생을 투영해 왔는지 모른다. 그는 최고의 맛을 만들어냈고, 사람들 역시 도쿠에의 팥이 들어간 도라야키를 한 입 맛보는 순간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람들의 편견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라는 제목은 언뜻 보면 최고의 도라야키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일상의 작은 차별과 배제를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살아내는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고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회사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하루는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쌓여가는 부담은 어깨를 짓누른다. 오늘도 빚을 갚기 위해, 혹은 내 어깨에 얹어진 책임을 책임지기 위해, 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똑같은 하루를 살아나간다.
그 과정은 지난하다. 이 하루가 꼭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지루하게 느껴진다. 다만 모든 일에는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분 1초가 모여 하루를, 또 다른 하루가 모여 1년이, 1년이 모여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일궈 온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비록 지난한 시간일지라도 우리가 이 시간 안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매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들, 곁에 살랑이는 바람, 커피 한 잔의 여유 같은 삶을 이루는 소소한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도쿠에는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만든 감옥에 다시 갇힌 채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삶에 대한 의미만은 누구의 편견도, 시선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생의 끝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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