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돈 값 오르는 시대, 한국 경제는 준비됐나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돈의 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한때 시장은 금리 인하의 시간을 기다렸다. 물가가 잡히고 미국도 긴축의 고삐를 풀 것이며, 한국도 그 흐름에 올라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물가는 쉽게 내려오지 않고 환율은 불안하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유가 변동성까지 겹치며 인플레이션의 불씨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저금리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시장은 이미 더 비싼 돈의 시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이 변화를 견딜 준비가 돼 있느냐다. 지난 십수 년간 한국 경제는 값싼 돈에 익숙해졌다. 가계는 대출로 집을 샀고, 기업은 낮은 조달비용을 전제로 투자를 늘렸다. 부동산 가격은 유동성 위에 쌓였고, 정부도 경기 둔화 때마다 재정과 금융 지원으로 충격을 덮었다. 구조조정보다는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에 기댔다. 그 결과 한국 경제의 체질은 금리 상승에 취약해졌다.

이미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린다. 은행 연체율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자금 사정은 나빠지고 있다. 가계부채는 여전히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신용대출이 얽힌 가계 재무 구조는 작은 금리 변화에도 민감하게 흔들린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늘고 소비가 줄어든다. 내수가 위축되면 자영업자 매출이 줄고, 이는 다시 연체와 폐업으로 이어진다. 긴축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기업 부문도 안심할 수 없다. 대기업은 현금흐름과 해외 조달 능력으로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다르다. 고금리와 고환율, 고원가가 동시에 닥치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난다. 저금리와 정책금융으로 버텨온 기업들은 이제 시장의 냉정한 평가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돈의 값이 오르는 시대에는 사업성 없는 투자, 부채로 버틴 확장, 부동산 담보에 기댄 경영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금융권도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금리 상승기는 은행에 기회이자 위험이다. 예대마진은 커질 수 있지만 취약차주 부실이 늘면 충당금 부담이 이익을 잠식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영업자 대출, 중소기업 대출, 제2금융권 연계 부실이 한꺼번에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평균 연체율만 보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위기는 늘 평균 아래 숨은 취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정책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방식은 더 이상 만능 처방이 아니다. 물가와 환율이 불안한 상황에서 섣부른 완화는 원화 약세와 자본 유출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무리한 긴축은 가계와 기업의 부실을 키울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과 선별 대응이다. 부실 가능성이 큰 대출은 조기에 정리하고, 생존 가능한 기업과 취약계층에는 정교한 지원을 해야 한다. 모든 부채를 살리는 정책은 결국 더 큰 부실을 만든다.

부동산 정책도 긴축 시대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대출 규제를 풀고, 전세대출을 확대하고, 세제 완화로 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부동산 가격이 금리보다 더 빨리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 있는 한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주거 안정은 빚을 더 내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급 정상화, 임대시장 투명화, 과도한 레버리지 억제로 풀어야 한다.

긴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거품을 걷어내고 자원을 생산적인 곳으로 돌릴 기회이기도 하다. 정부는 재정과 금융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하고, 기업은 부채 의존 경영에서 벗어나야 하며, 가계는 자산 가격이 영원히 오른다는 믿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낙관론이 아니라 냉정한 준비가 필요하다. 부채의 질을 점검하고, 금융의 방파제를 높이며, 성장의 기반을 부동산과 유동성에서 생산성과 혁신으로 옮겨야 한다. 긴축의 시대는 이미 다시 왔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준비할 용기가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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