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백룸' 세계에 열광한 10대들, '공간 공포'에 현혹된 이유

이날 극장 안 풍경은 좀 낯설었다. 일단 모두들 빠짐 없이 팝콘을 들고 왔고, 꽤 시끄러웠다. 3명 이상씩 무리를 지어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90% 이상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이렇게까지 학생들이 극장을 가득 채운 건 학창시절 단체관람 이후 첫 경험이었던 것 같아서 사뭇 낯설었다. 이날 해당 관에 걸린 영화는 ‘백룸’이었다.
 
잘 몰랐고 볼 생각도 없었으나 10대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사이 30만명이 넘게 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궁금증이 일었다. 아이들이 왜 이토록 ‘백룸’을 보고싶어 하는지.
 
최초의 '백룸'은 한장의 사진에서...

최초의 ‘백룸’은 2019년 미국의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비롯됐다. 누군가가 ‘불안한 느낌의 이미지’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더니 노란 형광등 빛이 가득한 텅 빈 오피스룸 사진이 올라왔고 그것이 ‘백룸’의 상징이자 시작이 되었다.
 
최초의 백룸 이미지 사진Mister Nautilus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최초의 '백룸' 이미지 [사진='Mister Nautilus'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이후 근근히 이어진 ‘백룸’ 세계관이 10대들 사이에서 ‘밈(meme, 온라인 유행 창작물)’으로서 폭발적으로 소비된 계기는 2022년 약 9분여의 단편영상 덕분이다.
 
유튜브 ‘Kane Pixels’ 채널에 올라온 ‘The Backrooms’가 그것이다. 현재시간 조회수 8천100만을 넘긴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은 당시 만 16세의 고등학생이었던 케인 파슨스(Kane Parsons)였다. 파슨스는 3D 영상 프로그램으로 혼자 영상을 만들었고 ‘백룸’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단편 영상이 현재 형성된 ‘백룸’ 세계관 속 여러 설정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세계관에 따르면 첫째, ‘백룸’은 거의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The Backrooms’의 영상에서도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 우연히 ‘백룸’이라는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로 떨어진다. 벽이나 바닥 같이 물리적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 사이를 우연히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이 세계에서는 ‘노클리핑’이라고 부른단다.
 
이 급작스러운 공간의 전환은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본 어린 친구들은 ‘노클리핑’ 현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게임에 익숙한 이 세대는 게임 속 공간 이동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백룸’으로의 전환 역시 그 자체로 납득을 하는 것이다.
 
둘째, ‘백룸’은 텅 빈 공간이면서 끝이 없는 방대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사람도 없고 집기나 가구 같은 것도 몇 개 없다.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이나 창이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만들어낸 공포. 그 개념을 설명하는 말로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가 있다. 검색을 하니 ‘평소 친숙했던 공간이 원래라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괴리감과 위화감을 자아내는 공간’이라고 설명돼 있다.
 
‘백룸’의 시초는 노란빛의 사무실이었지만 ‘리미널 스페이스’의 예로 지하철, 쇼핑몰, 수영장, 학교 등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2022년 파슨스의 단편 영상 이후 확장된 ‘백룸’은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수많은 파생 영상이 한때 유튜브 등 SNS를 휩쓸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영상 ‘The Backrooms’이 제공하는 설정은 ‘미확인 동(動)체’의 등장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The Backrooms 영상 사진유튜브 Kane Pixels 채널 영상 캡처
'The Backrooms' 영상 [사진=유튜브 'Kane Pixels' 채널 영상 캡처]
 
생명체인지, 기계인지, 외계인인지 그 어떤 정보도 없지만 ‘움직이기는 하는 어떤 것’이 불쑥 등장한다. 그 지점에서 공포가 발현된다. 9분의 러닝 타임 동안 대여섯번 등장(다 합친 시간이 5초도 안된다)할 뿐인 이 ‘동체’ 때문에 나머지 모든 시간이 공포가 된다.
 
내용적인 설정 외에도 형식적인 설정, 예를 들면 8,90년대 VHS 화질을 구현한 것이라던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카메라맨 시점의 1인칭 촬영)’ 기법을 사용해 흔들리는 화면 등 실제상황 같은 현장감을 부여한 것 등도 있다.

‘GTA’ 시리즈 같은 3D 게임에 익숙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백룸’ 알고리즘은 2022년부터 2023년 쯤 그 사이에 아주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린 세대답게 유행이 길게 가진 못한 모양이다.
 
'백룸'의 아버지, 상업 장편영화를 만들다
 
하지만 ‘백룸’의 아버지 케인 파슨스가 할리우드의 이름 난 제작사와 손을 잡고 비록 저예산이긴 하지만 장편 상업영화 ‘백룸’을 만들었다. 2022년의 ‘The Backrooms’ 영상은 영화 개봉 후 천만 이상의 조회수가 다시 급증했다. ‘백룸’ 알고리즘이 예전처럼 살아난 것이다.
 
영화 ‘백룸’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더불어 미국 영화 사상 최연소 감독의 박스오피스 1위 등극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2005년생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제일 많이 찾은 관객은 몇 년 전 자신의 휴대폰 속 조그만 영상으로만 봤던 백룸의 세계를 큰 화면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10대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어떤 공포영화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열광했던 휴대폰 속 ‘밈’을 기성의 큰 매체를 통해 정식으로 소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백룸 중 한 장면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백룸' 중 한 장면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2012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가리켜 ‘알파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이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하게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세대라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생애를 함께 해온 ‘알파세대’가 궁금해했고 보고 싶었던 공포는 기존의 그것과 뭐가 달랐을까.
 
‘백룸’에서 공포가 발생하는 기원은 따로 특정되지 않는다.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는 ‘크리처’도 아니고 외계인이 인간의 세계를 관찰하겠다고 만든 ‘비바리움’도 아니다. 특정 공간에 붙어버린 원한 가득한 귀신이나 유령도 아니며 깔끔하게 미친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백룸’ 공포의 기원을 굳이 말해야 한다면 ‘불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백룸’ 세계에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뭐 하나 확실하지 않은 설정, 대상, 공간, 서사 등이다.
 
‘백룸’의 독특함과 기이함은 이 ‘설명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쇼츠’에 익숙한 알파세대에게 ‘서사’ 즉 이야기의 처음과 끝, 원인과 결과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순간의 재미와 특이함, 내 감정을 자극하는 민감성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밈’이 될 수 있으니까.
 
온라인 밖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영화 ‘백룸’은 그래서 지금 10대 청소년들, ‘알파세대’에게 소구하는 지점이 있다. ‘밈’으로서 짧게만 봐왔던 미지의 세계를 영화 ‘백룸’은 그 공간의 이미지만큼은 확실하게 담아냈다.
 
VHS 화질이 아닌 고화질의 ‘백룸’ 속 공간 디자인은 초현실주의 회화를 보는 듯 나름 예술성이 느껴질 정도로 훌륭하다. 쌓여있는 가구들, 공간 속 문이나 창의 레이아웃, 백룸 속 ‘동체’들의 기이한 형상 등이 대충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모이고 모인 이채로움과 독특함이 불안을 형성하고 실제로도 영화 ‘백룸’을 보는 동안 관객이 느끼는 심리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백룸’의 성공은 기존 상업 공포영화의 기법을 대부분 따르지 않고 ‘밈’이었던 ‘백룸’ 특유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관객의 긴장감 역시 비슷한 강도로 영화 끝까지 끌고 가는 데 있다.
 
'백룸'의 성공 요인이 곧 한계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백룸’의 한계이기도 하다. ‘백룸’의 가장 큰 공포의 동인인 ‘설명되지 않음’은 1회성이기 때문이다. 처음 한 번은 설명해주지 않고 이미지의 차별화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즐길 이유를 주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설명해주지 않는 모호함만으로 이 세계관이 오래 갈 수 있을까. ‘백룸 2’가 나온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간 서사가 어쨌든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호기심이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백룸’의 세계관은 설명되면 될수록 이른바 ‘가오’가 상한다. 첫 번째 단편 ‘The Backrooms’ 이후에 ‘케인 픽셀즈’ 채널이 내놓은 속편들은 처음만큼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서사가 추가될수록 ‘백룸’의 세계가 가졌던 특유의 개성이 필연적으로 흐려지고 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이 다음 ‘백룸’ 세계의 존폐가 달렸다. 젊디 젊은 케인 파슨스 감독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그것일 것이다.


* 자투리 리뷰 :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한 감상을 빼고 난 후 남겨진 또다른 감상의 자투리를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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