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2 : 최태원의 대답」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네 가지 역량으로 생각, 적응, 공감, 바디스킬을 제시했다.
AI가 인간의 지식과 생산능력을 상당 부분 대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만의 경쟁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핵심은 이 네 가지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방송을 보면서 인재론 이상의 의미를 읽었다. 그것은 AI 시대 기업가정신에 대한 통찰이었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기업가정신을 연구해 왔다. 기자로 산업 현장을 취재했고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기업가정신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의 결정요인과 지역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 혁신의 확산에는 기업가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노동과 자본,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기업가정신이었다.
필자는 기업가정신을 단순한 창업정신으로 보지 않았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경제학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AI 혁명이 본격화된 지금 필자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직업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이끄는 기업가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왜 그런가.
AI는 정보를 평준화한다. AI는 지식을 민주화한다. AI는 기술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그러나 AI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지 못한다.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 결국 AI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증기기관이 스스로 철도를 건설하지 않았고 전기가 스스로 공장을 만들지 않았듯 AI도 스스로 혁신을 만들지 못한다. 언제나 그 중심에는 기업가가 있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성장을 결정할 것이다.
[생각의 근육]
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첫 번째 근육은 생각이다. 필자는 이것이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는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왜 사람들은 불편한가. 왜 이 시장은 비효율적인가. 왜 기존 방식은 바뀌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이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든다.
AI 시대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누구나 같은 AI를 사용할 수 있다. 누구나 비슷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필자는 질문에서 나온다고 본다.
AI는 답변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는 인간이 결정한다. AI는 과거를 학습한다. 기업가는 미래를 상상한다. AI는 패턴을 분석한다. 기업가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최근 “AI 시대에는 암기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풍부한 지식에서 나온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경제혁신을 말할 수 없고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기술혁신을 말할 수 없다.
필자가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면서 만난 성공한 기업인들은 예외 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시장을 공부했고 기술을 공부했고 사람을 공부했다. 독서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혔고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키웠다.
AI 시대에도 공부는 중요하다. 다만 목적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정답을 외우기 위해 공부했다면 앞으로는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지식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결국 생각의 근육은 기회발견 능력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장을 발견하고 남들이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기업가정신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응의 근육]
두 번째 근육은 적응이다.
기업가정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싸우는 과정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업가는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규모가 경쟁력이었다. 큰 기업이 유리했다. 지금은 다르다. 변화의 속도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규모보다 적응력이 중요하다.
AI 혁명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언론과 플랫폼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산업 역시 거대한 변화 속에 있다. 과거에는 기자가 정보를 독점했다. 이제는 누구나 AI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기사 작성, 번역, 요약, 영상 제작까지 AI가 수행한다. 그렇다고 언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실패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된다.
필자는 수많은 기업인을 만나면서 성공한 기업가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학습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빠르게 실험하고 빠르게 수정한다.
AI 시대에는 이런 적응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실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실험가가 되어야 한다.
경제성장의 역사도 결국 적응의 역사였다. 산업혁명에 적응한 국가가 성장했고 정보혁명에 적응한 기업이 성공했다. AI 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를 지배하는 것은 가장 강한 기업이 아니라 가장 빨리 적응하는 기업일 것이다.
[공감의 근육]
세 번째 근육은 공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AI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기술을 강조한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 소비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 시장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고객가치 창조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고객조차 알지 못하는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 기업가의 역할이다.
스티브 잡스는 시장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고객보다 먼저 미래를 이해해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고객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조직 구성원의 고민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에는 신뢰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신뢰는 부족하다. 상품은 넘쳐나지만 브랜드는 부족하다.
결국 미래의 경쟁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조직이 아니다.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얻는 공동체다. 기업가정신 역시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필자는 경제성장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사람의 삶을 개선할 때 가능하다. 고객과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혁신은 오래갈 수 없다.
AI가 발전할수록 공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술은 복제될 수 있지만 신뢰는 복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디스킬의 근육]
최태원 회장이 말한 네 번째 근육은 바디스킬이다.
처음에는 다소 의외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을 실행력으로 해석한다.
기업가정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행동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실행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기업가정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행동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시장에 뛰어드는 용기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행력이다.
AI는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업계획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공장을 세우고 고객을 만나고 조직을 이끄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필자는 언론사 경영을 하면서 수많은 계획서를 보아왔다. 대부분의 계획은 훌륭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겨지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이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AI를 활용한 아이디어는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의 가치로 바꾸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결국 기업가정신의 마지막 단계는 실행이다.
기업가는 생각하는 사람인 동시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시장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보상한다.
그래서 필자는 바디스킬을 기업가정신의 완성 단계라고 본다.
AI 시대는 기업가정신의 르네상스다
필자는 30년 동안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경제성장의 진정한 원동력은 기술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수단이다.
기업가정신은 방향이다.
기술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기업가정신은 누구나 가질 수 없다.
AI 혁명은 앞으로 더 많은 지식을 무료로 제공할 것이다. 더 많은 기술을 평준화할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정신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
적응하는 능력.
공감하는 능력.
실행하는 능력.
최태원 회장이 말한 네 가지 근육은 사실 기업가정신의 네 가지 얼굴이다.
생각은 기회를 발견하는 능력이고 적응은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능력이며 공감은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고 바디스킬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실행력이다.
필자는 AI 시대가 기업가정신의 종말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의 르네상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AI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도구를 제공할수록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생각하는 인간, 적응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AI 기술 자체보다 AI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기업가정신의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AI 시대에도 성장의 주인공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은 기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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