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렛츠런파크 [사진=권성진 기자]
"구매 상한선 준수는 건전한 여가의 시작입니다."
지난 주말 취재차 찾은 과천 렛츠런파크 곳곳에서 눈에 띈 문구다. 마사회는 도박 중독을 막기 위해 마권 구매 한도를 1회 10만원으로 제한하는 등 자정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경마 산업을 둘러싼 ‘사행산업’ 이미지가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같은 인식은 일상 속에서도 드러난다. 경기 남부 4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금·토·일요일 오후 경마공원역 일대는 다소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술과 담배 냄새를 풍기는 이용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풍경은 경마를 ‘여가’보다는 ‘도박’으로 연상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 자체가 산업 전반적인 이미지를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마사회도 변화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경마장을 ‘경마공원’으로, 다시 ‘렛츠런파크’로 이름을 바꾸고 포니랜드와 말 박물관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시설을 확충했다. 외형적으로는 ‘레저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한 것이다.
반면 주요국에서 경마의 모습은 다르다. 미국의 켄터키 더비는 높은 시청률과 함께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았고, 영국의 로열 애스콧은 왕실 전통과 결합된 대표 행사로 꼽힌다. 일본의 재팬컵 역시 세계적인 명마가 참가하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로 성장했다.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로 소비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최근 불거진 마사회와 렛츠런파크 이전 논의는 단순한 입지 문제를 넘어선다. 오히려 한국 경마 산업이 구조적으로 재설계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리적 공간을 바꾸는 과정에서 산업의 성격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 경마장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찾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흥행을 계기로 젊은 층 유입에도 성공했다. 인기 경주마를 캐릭터화해 콘텐츠와 굿즈로 확장한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경마를 ‘경기’에서 ‘문화’로 확장한 결과다.
관건은 ‘누가 찾는 공간이냐’다. 현재 렛츠런파크는 고령층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입장객 90%가 50대 이상이었다. 새로운 공간은 청년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지 조건도 중요하다. 정부가 약속한 것처럼 서울 접근성을 확보하고, 경마 외에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해야 한다. 동시에 경마 자체를 레저 스포츠로 전환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 변화다. 명확한 비전과 지원 방안 없이 이전을 추진한다면 현장의 불안만 키울 수 있다. 실제 마사회 내부에서도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경마 산업은 단순한 사행산업을 넘어 말 산업 전반과 연결돼 있다. 최근에 만난 말산업 관계자는 "경마가 건전한 스포츠로 위상이 제고되면 승마 인구 확대, 경주마 브리딩(번식) 산업 성장, 조련사·기수·수의사 등 전문 직종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번 마사회·렛츠런파크 이전 논의가 단순한 이전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마 산업이 ‘사행’의 틀을 벗고 ‘문화와 산업’으로 재탄생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권성진 아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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