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쟁의 충격은 휴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장은 멈춰도 유가와 환율, 물류와 투자 심리에는 긴 그림자가 남는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대외 개방도가 큰 경제는 그 여파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받는다. 정부가 고유가 충격 완화를 위한 추경과 유류세·민생 대책을 병행할 만큼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체감 부담이 커지고, 환율이 흔들리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에 더 신중해진다. 지금은 정책 하나가 시장 전체의 심리에 미치는 파급을 냉정하게 따져야 할 때다.
이런 국면에서 국회가 논의 중인 플랫폼 입법은 목적의 정당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최근 쿠팡 측의 개인정보 유출 대응은 분명 국민의 불신을 키웠고, 그래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타당하다. 그러나 소비자 불편과 분노가 곧바로 가격 통제형·사전 규제형 입법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뢰를 바로잡는 일과 산업 질서를 설계하는 일은 같아 보이지만, 정책 수단은 달라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가 주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보고서는 배달 플랫폼 규제 법안이 미국 측에서 비관세장벽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언급했고, 비교적 규모가 큰 미국 연계 플랫폼 기업에 규제가 적용될 경우 통상 마찰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수수료 상한을 법률로 직접 규정하는 방식은 사업자의 가격 결정권과 시장 원리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기존 공정거래법·전기통신사업법 등과의 중복 가능성, 혁신 저해와 소비자 후생 악화 가능성 역시 함께 경고했다.
이 대목은 지금의 국제 통상 현실과 맞물려 더 무겁다. 미국은 디지털 규제를 더 이상 단순한 국내 입법으로 보지 않는다. USTR의 2026년 보고서도 한국의 플랫폼 규제 논의와 데이터·온라인 서비스 관련 제도를 디지털 장벽 이슈로 적시했다. 더군다나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를 위헌으로 판정한 직후 무역법 301조에 의거 주요국들의 불공정 무역 조사에 착수함으로써 어떤 통상 조치가 나올지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질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 이후의 세계는 과거처럼 단순한 진영 논리로 굴러가지 않는다. 안보는 동맹으로 묶이고, 통상은 거래로 움직이며, 기술 규범은 시장 접근과 직결된다. 이런 질서에서는 "우방이니 괜찮다"는 안일함도, "국내 여론이 원하니 밀어붙이면 된다"는 단순함도 모두 위험하다. 한국 같은 중견 무역국은 가치와 이익, 동맹과 자율, 소비자 보호와 혁신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답은 분명하다. 첫째,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안은 엄정하게 책임을 묻되, 그 대응은 보안·투명성·사후 구제 강화 중심으로 가야 한다. 둘째, 플랫폼 입법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도록 시장 영향 평가와 통상 영향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 셋째, 가격 직접 개입이나 과도한 사전 규제보다는 자율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 법 체계를 정밀하게 집행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넷째, 미국과는 디지털 통상 대화를 선제적으로 강화해 규제 목적과 정당성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정책은 분노를 해소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지키는 설계여야 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센 구호가 아니다. 민생을 지키고, 동맹의 균형을 해치지 않으며, 시장의 신뢰를 살리는 정교한 해법이다. 전쟁의 불길이 남긴 경제적 상처와 흔들리는 세계 질서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강한 규제가 아니라 영리한 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지금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길이다. 지금은 국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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