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어느덧 46년이 흘렀다. 이제 5·18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아픔이나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국가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려 했던 국민 저항의 역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역사의 완성은 화해와 용서에서 이루어진다. 광주의 비극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 유족들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당시 국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책임 세력 역시 역사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증오나 정치적 이용이 아니라, 진실한 참회와 인간 존엄을 회복하려는 결단이다.
그 상징적 출발은 가해 책임 세력의 진정 어린 사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을 비롯해 당시 권력 핵심 인사들의 유족과 후손들이 언젠가는 함께 광주를 찾아야 한다. 당장의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역사의 상처 앞에 고개 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희생자 영령 앞에 사죄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증오의 악순환을 끊고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의식이 될 수 있다.
인류의 위대한 경전들은 모두 생명의 존엄과 화해를 가르쳐 왔다. 성경은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불교의 《법구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을 수 없고, 오직 자비로써만 그칠 수 있다.” 《논어》에서는 공자가 말한다. “덕으로 원한을 넘어야 한다.” 《도덕경》 또한 말한다. “강한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부드러운 것이 끝내 세상을 이긴다.”
결국 인류 문명의 위대한 정신은 하나로 모인다. 인간 생명을 함부로 여긴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며, 역사는 결국 생명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편에 선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980년 5월의 비극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교훈 가운데 하나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잃는다. 정치의 가장 근본 목적은 권력 유지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의 존엄을 지키는 데 있다.
그래서 5·18은 단순히 민주주의 운동만이 아니라 ‘생명 존중의 역사’이기도 하다. 총탄 속에서도 시민들은 서로를 살리려 했고, 주먹밥을 나누었으며, 피 흘리는 이들을 위해 헌혈차 앞에 줄을 섰다. 광주의 본질은 증오가 아니라 인간애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시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정치적 진영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고,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가 넘친다. 그러나 광주가 진정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라면, 이제 광주는 미움의 기억을 넘어 화해와 용서의 정신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한 사과 없는 화해는 위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가해 책임 세력의 진정성이다. 보여주기식 참배나 형식적 사과가 아니라, 인간 생명 앞에 겸허히 무릎 꿇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희생자 유족들과 광주 시민사회 역시 역사적 대승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5·18을 완전히 극복한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지금은 편히 묻히지 못한 채 유골함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인간 생명을 경시한 권력이 역사 속에서 어떤 최후를 맞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그러나 용서는 역사의 악순환을 끝낸다. 광주의 오월은 이제 대한민국에 더 높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미움을 넘어설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인간 생명의 존엄 위에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가. 그 길의 끝에서만 5·18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신으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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