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2007년, 한 공중파 방송이 돈에 복수하려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에 빠진 세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드라마를 선보였다.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드라마는 제목도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바로 '쩐의 전쟁'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 '쩐의 전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온 천지에 돈 냄새가 진동한다. 반도체 초호황이 몰고 온 역설이다.
반도체 쌍두마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의 급등에 힘입어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7000선을 넘어선 지 며칠 만에 8000선 턱밑까지 다가섰다. 조만간 1만선도 돌파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낯설지 않다.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조만간 SK하이닉스가 그 뒤를 이을 태세다. 주식투자로 수십 배를 벌었다는 초대박 성공사례가 줄을 잇는다. 몸이 단 2030은 영끌 대출 받아서, 고령층은 노후 자금을 주식 투자에 몰빵한다. 나만 빼고 다 번다는 불안 심리, 즉 '포모(FOMO) 증후군'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한편에서는 성과급 배분을 놓고 곳곳에서 노사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돈다. SK하이닉스가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가 '성과급 치킨게임'이라는 허리케인을 몰고 왔다. 2024년 SK하이닉스가 노사 합의로 '영업이익 10% 성과급'을 채택했다. 이때만 해도 10조원이던 영업이익이 2년 만에 200조원으로 폭증할 줄 누가 알았으랴. 노사합의대로라면 올해 직원 1인당 성과급 예상수령액은 5.8억원. 성과급 몇 년치만 모아도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더 어렵다는 로또 1등 당첨금에 필적하니 SK하이닉스가 취업시장, 결혼시장에서 상종가를 치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하이닉스 직원들이 많이 사는 지역 집값이 들썩이고, 셔틀버스가 지나간다 하여 '셔세권'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기 어려운 법. 하물며 늘 일등을 표방하는 삼성 아니던가. 더 받진 못할지언정 덜 받을 순 없을 터,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한 배경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삼성전자의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조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회사측을 압박한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중재에 나섰지만 노사 간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파업의 후유증은 엄청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직간접 손실 규모는 최대 1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삼성전자의 중장기 경쟁력 훼손이다. 반도체 공정은 파업이 끝나도 생산라인 정상화에 2~3주 이상 소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파업으로 인해 생산 차질이 가시화되면 엔비디아를 비롯한 핵심 고객들은 공급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TCMC 등으로 이탈할 것이다. 글로벌 칩 전쟁에서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경쟁사들은 어부지리를 얻는 반면 고객의 신뢰를 잃은 삼성전자의 입지는 축소되고 이는 한국 경제의 위기로 직결된다. 중국의 한 신문은 삼성전자의 파업이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예상 영업이익이 300억이라고 한다. 노조의 요구는 그 15%인 45억 원을 성과급으로 내놓고 그걸 제도화하라는 거다. '슈퍼리치 금수저노조'에 대한 부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한번 따져보자. 노동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성과를 낸 노동자가 보상을 요구하는 건 정당하다. 허나 매사 과유불급이다. 그 정당한 요구가 선을 넘어 자신들의 일터는 물론 나라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후과를 낳을 정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영업이익의 15%를 달라는 요구의 적정성은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옳은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온전히 회사와 직원만의 몫인가? 주주와 협력업체의 몫은 없나?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회사를 키우는 데 기여한 퇴직 임직원의 몫은 없을까? 각종 제도와 편의 제공으로 적극 지원한 정부와 국민의 몫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설투자와 연구개발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이들 모두가 제 몫을 달라고 나서면 회사 존립이 가능하기는 할까? 노조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고 여론의 지지를 폭넓게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노조친화적인 현 정부에서조차 긴급조정권 발동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지 삼성전자 노조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혼돈의 와중에 AI로 번 돈 일부를 '국민 배당' 하자면서 청와대도 쩐의 전쟁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나섰다. 파장이 커지자 문제의 글을 쓴 김용범 정책실장의 개인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 배당 주장이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본래의 취지가 무엇이었든 반시장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한 발언을 굳이 이 시점에 해야 했을까? 고위 정책관계자의 섣부른 발언에 잘 나가던 증시도 화들짝 놀라 5% 넘게 급락했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 수몽(壽夢)이 초나라를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엄명을 내렸다. “누구든 출병을 말리면 목을 베겠다.” 대신들의 우려는 컸다. 초나라를 공격해 설령 승리하더라도 국력이 크게 소모된 틈을 타 다른 제후국의 침략을 당하는 후환을 두려워 한 것이다. 그러나 목을 베겠다는 왕의 엄명에 누구도 감히 간언하지 못했다. 대신들의 우려에 깊이 공감을 한 태자 우(友)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어느 날 태자가 궁궐 뒤 정원에서 새를 잡는 모습을 일부러 왕의 눈에 띄게 했다. 왕이 관심을 보이자 태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매미가 높은 곳에 앉아 슬피 울며 이슬을 마시고 있으나 뒤에 사마귀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사마귀는 몸을 낮추고 앞다리를 굽혀 매미를 잡으려 하지만, 그 곁에 황작(몸 길이 14cm 정도인 참샛과의 새)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합니다(蟬高居悲鳴飲露, 不知螳螂在其後也;螳螂委身曲附欲取蟬, 而不知黄雀在其傍也)" 황작은 사마귀를 잡아먹으려 목을 길게 빼고 있지만, 제가 새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매미와 사마귀, 황작은 모두 눈앞의 이익만 생각할 뿐 그 뒤에 닥칠 화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왕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태자가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간언하고 있음을. 경솔히 초나라를 공격하여 후환을 남기지 말라는 뜻임을. 오왕은 즉각 초나라 출병을 중지시켰다. 한나라 유향(劉向)이 쓴 《설원說苑》'정간(正諫)'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눈앞의 이익만을 탐하다가 재앙이 곧 닥치는 줄 모른다'는 뜻으로 쓰이는 성어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捕蟬, 黄雀在後)'가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대개 '당랑포선' 네 글자로 쓰이며 '당랑박선(螳螂搏蟬)'이라고도 한다.
성어 '당랑포선'에는 눈앞의 이익만을 탐하는 단견이나 근시안적 행태를 경계하라는 지혜가 담겨 있다.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다가 황작에게 잡아먹히듯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다가 경쟁사에 덜미를 잡히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AI시대의 도래와 함께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전쟁 상태다. 전쟁 중에 내전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존재할 수 있다. 황작은 늘 뒤에 있다.
SK하이닉스가 일으킨 작은 불길이 삼성전자를 거쳐 조선, 자동차, 바이오, 통신 등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너도나도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 요구한다. 업종 불문, 파업으로 판을 깨는 것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사측은 합당한 보상을 제시하고, 노측은 회사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합리적인 배분을 요구해야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이 상식적인 말이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보상 포퓰리즘' 사태를 푸는 모범답안이다. 이재용 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다시 만나기로 한 삼성전자 노사가 마지막 담판에서 극적인 합의를 했다는 낭보가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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