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7) 훈수꾼이 더 잘 본다 - 당국자미(當局者迷) )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안보의 핵심 독일 주둔 미군을 오천명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EU산 차량 관세도 25%로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란전쟁 지원 비협조에 대한 뒤끝 작렬이다. SNS 익애(溺愛), 전통 언론 불신 등 여러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닮은꼴 행보를 보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뒤끝도 만만치 않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SNS에 공유한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시신 처리 영상'은 엄중한 시기에 불거진 민감한 이슈라 외교적 파장이 컸다. 그럼에도 이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을 향해 "사욕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매국노"라느니, "오목 좀 둔다고 명인전 훈수하는 분들"이라느니 하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문제의 영상은 사실을 왜곡한 2년 전 영상으로 판명되었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반(反)이스라엘 세력의 SNS 선전전에 낚여 보기좋게 활용당한 것이다.

대통령의 의도와는 역시 무관하게 '오목 좀 둔다고 명인전 훈수하는 분들'이라는 비유가 화제를 모았다. '훈수(訓手)'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구경하던 사람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주는 행위 또는 남의 일에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뜻한다. '오목(五目)'은 대개 바둑을 배우기 전에 접하는 단순한 바둑 놀이이다. 결국 대통령의 비유는 뭘 알지도 못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나선다는 비아냥인 셈이다.

문득 대통령의 바둑 실력이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아마 5단 실력에 자칭 '바둑광'이다. 아마 5단이면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거의 정상급 수준이니 평소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을 만한 기력이다. 허나 어느 분야에서든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 야당과 언론의 실력을 오목 수준으로 폄하한 것은 조롱에 가까운 과소평가이고, 자신의 SNS 활동을 프로바둑 고수들이 겨루는 명인전에 비유한 것은 자아도취적 과대평가라 아니할 수 없다. 백보를 양보해서 야당과 언론의 실력이 대통령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 치자. 그러면 훈수도 둘 수 없는 걸까? 일찌기 요순 시대에 바둑을 발명한 나라답게 중국에는 훈수와 관련된 성어와 고사도 있으니 이참에 한번 살펴보자.

당 현종 때의 이야기다. 대신 위광(魏光)이 건국 초기의 명재상 위징(魏徵)이 정리하고 수정한 《유례(類禮)》를 경서(經書)의 반열에 올려 유가의 경전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황제가 즉시 윤허하고는 박학다식하고 훈고(訓詁)에 정통한 학자 원담(元澹)에게 이를 면밀히 교열하고 주해를 덧붙이라고 명했다. 

시일이 흘러 원담이 임무를 완수하자 우승상 장열(張說)이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의 《예기》는 전한의 대성(戴聖)이 편찬하여 지금까지 천 년 가까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또한 후한의 정현(鄭玄)이 주석을 달아 이미 경서의 반열에 올랐는데, 이제와서 굳이 위징이 수정한 판본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습니까?" 현종은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겨 생각을 바꾸었다. 졸지에 헛고생을 하게 된 원담이 판본을 바꾸는 게 옳다는 자신의 관점을《석의(释疑)》라는 글을 통해 밝혔다. 

《석의》는 주인과 손님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일종의 논문이다. 먼저 손님이 묻는다. "대성이 편찬하고 정현이 주석을 단 판본과 위징이 수정한 판본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낫습니까?" 주인이 답한다. "대성이 편찬한 판본은 전한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수정과 주석을 거치며 문장 속에 모순되는 바가 많아졌습니다. 위징이 이를 감안해 재정리를 한 것인데, 고루하게 옛것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반대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그렇군요. 이는 마치 바둑을 두는 것과 같아요. 옆에서 보는 사람은 수가 또렷하게 보이는데, 오히려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흐릿해져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이지요."

송대의 대학자 구양수가 《신당서(新唐書)》를 편찬하면서 '원담전(元澹傳)'에 이 이야기를 담고는 다음과 같이 한 줄 정리했다. "當局稱迷, 旁觀必審, 何所謂疑而不申列?(일에 직접 관계된 사람은 미혹되기 쉬우니,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반드시 분명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어찌 의심스러운 점을 펼쳐 밝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성어 '당국자미 방관자청(當局者迷, 旁觀者清)'이 유래했다. 대개 네 자로 줄여서 '당국자미' 혹은 '방관자청'으로 쓰인다.

바둑판 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 생각이 많아 뻔한 수도 못보고 놓치기 쉽다. 감정이나 승부욕에 휩싸여 판단이 혼미해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설령 하수일지라도 바둑을 두고 있는 고수가 못본 수를 발견하기도 한다. 제3자인 만큼 상황을 차분하고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 성어 '당국자미'가 주는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본고 31회차에서 다룬 바 있는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의 메시지 또한 같은 맥락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천하절경 여산을 10여일 동안 둘러본 소식은 산 서북쪽 기슭에 있는 서림사 한쪽 벽에 '제서림벽(題西林壁)'이란 시 한 수를 남기며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훈수란 그런 것이다. 본시 야당과 언론의 역할은 훈수에 있고, 수는 훈수꾼에게 더 잘 보이는 법이다. '훈수꾼이 여덟 수를 더 본다'라든가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 하여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여덟 집 정도 유리하다'는 격언이 괜히 생겼을까. 대통령은 좀 더 겸손해야 한다. 야당과 언론을 비난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외교 갈등을 자초한 자신의 가벼움부터 성찰해야 옳다. 야당과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훈수다.

대통령의 말이나 SNS 발언이 논란을 빚는 일이 너무 잦다. 지난 2월에는 캄보디아 내 중국 범죄조직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한국인 건들면 패가망신'이라고 현지어로 메시지를 올렸다가 캄보디아 측의 항의를 받고 슬그머니 지워야 했다. 평안북도 구성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대북 기밀 정보 공유 제한의 빌미를 제공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엄호한 발언은 미국의 의구심만 키웠다.

출퇴근 시간대 어르신 지하철 무료 이용 제한이나 아파트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 축소에 대한 섣부른 언급은 또 어떤가. 지하철 무료 이용 제한 방안은 노령층의 거센 반발에 화들짝 놀라 쏙 들어갔고, '장특공'은 대통령의 SNS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공소취소 특검법'과 더불어 6•3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안보와 세금 문제는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공소취소 특검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등권에 위배되며 이는 요즘 젊은 세대가 극도로 민감해 하는 '공정'의 문제를 건드린다. 지리멸렬한 국민의힘 덕분에 진작부터 여권의 압승이 점쳐지는 가운데 다 된 죽에 코 빠뜨릴새라 '부자 몸조심' 해야 할 민주당으로선 반갑지 않은 일들이다. 엊그제는 '소풍 발언'이 역풍을 맞아 청와대 대변인이 부랴부랴 '의무 보장'이란 형용모순적 표현까지 써가며 부연설명에 나서야 했다.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노자가 말했다.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지니 '불여수중(不如守中)',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보다 못하다고. 바둑에서 가장 위험한 건 앞뒤 생각 없이 덜컥 두는 수다. '덜컥수'는 패착으로 이어진다.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즉흥적 메시지 발신은 덜컥수와 다름없다. 말은 해야 맛이라지만,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강하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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