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일찌기 노자가 말했다. 보원이덕(報怨以德)하라고. 덕으로 원한을 갚으라는 말이다. 누군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자에게 물었다. 《논어》14장 '헌문(憲問)편'은 공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기록했다.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은 곧음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아라(子曰:何以報德?以直報怨, 以德報德)." 남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하는데 내가 그를 좋게 대한다면, 남이 나를 좋게 대할 경우에는 그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하느냐? 그러니까 '이직보원(以直報怨)', 즉 곧음으로써 원한을 갚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곧음'이란 무엇인가. 솔직한 대응이다. 옳은 것은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은 그르게 여기며, 착한 것은 착하게 여기고 악한 것은 악하게 여겨서, 나에게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좋게 대하고 나를 좋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노자는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주라는 예수 같고, 공자의 답변에서는 일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으로 '동태(同態)복수'를 강조한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 연상된다. 허나 논어의 핵심 정신이 '인(仁)' 한 글자에 담겨 있다고 할 만큼 '어질고 자애로움'을 중시한 공자 아니던가. 그저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라는 데 답변의 방점이 찍혔을 것이나, 중국인들은 이를 당한 만큼 되갚아 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아울러 봉건적 충효사상과 결부되면서 복수를 당연시하는 가치관이 자리잡았다는 게 중론이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성어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十年不晚)'은 그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 성어는 바꿔 말하면,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를 갖고 철저히 준비해서 하라는 것이다. 복수에 대한 중국인의 집요함이 엿보인다.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도 복수에 대한 어록을 남겼다.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는다. 만약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人不犯我, 我不犯人;人若犯我, 我必犯人)."
우리에게 친숙한 고사성어 '와신상담'은 오나라 왕 부차와 월나라 왕 구천이 서로 복수를 주고받는 이야기다. 소싯적 한때 심취했던 무협지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도 복수다. 어린 주인공이 무림의 절대 고수로 성장한 후 억울하게 죽은 부모나 스승의 원한을 갚고 표표히 길을 떠나는 복수의 서사에 숱한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얻는다. 강경하고 공세적인 태도로 외교적 갈등을 키우는 중국의 이른바 '전랑(戰狼)외교' 역시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에 당했던 '백년의 한'을 되갚으려는 뿌리깊은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장구한 중국 역사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독보적 위상을 굳힌 인물이 오자서(伍子胥)다. 춘추시대 말기 초나라 명문가의 자제 오자서는 가족을 무고하게 죽인 초나라 왕을 상대로 평생을 바쳐 처절하고 잔혹한 복수극을 펼쳤다. 당시 초나라를 다스리던 평왕(平王)은 한때는 현군으로 칭송받기도 했으나 늘그막에 총기가 흐려져 태자의 부인, 즉 며느리가 될 진(秦)나라 공주의 미모에 혹해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평왕을 부추겨 패륜을 저지르게 한 측근 비무기가 후환이 두려워 태자를 제거하려 했다. 이를 눈치챈 태자가 이웃나라로 피신하자 태자의 스승이자 후견인이던 오자서의 아버지와 일가족에게로 칼날이 향했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죽을 뻔했던 오자서는 살아서 훗날 반드시 복수해 달라는 형의 유지를 가슴에 새기고 초나라를 탈출했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오나라에 안착한 오자서는 절치부심, 병법의 대가 손무와 함께 오나라 왕 합려를 보좌하여 부국강병을 이룬 후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 수도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평왕은 이미 죽은 뒤라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눈을 파내고 3백 대의 채찍질을 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형이 죽은 지 16년 만의 복수였다.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성어 '굴묘편시(掘墓鞭屍)'가 유래한 역사적 배경이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 시절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시신을 욕되게 하는 이런 복수는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과도한 복수라고 개탄했다. 굴묘편시가 통쾌한 복수를 의미하는 한편 상식과 순리를 벗어난 지나친 행동을 일컫기도 하는 이유다. 출전은《사기•오자서열전》이다.
복수에 대한 이웃나라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그게 어디 그들만의 이야기랴.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크고 작은 복수극이 펼쳐진다. 인간은 복수를 꿈꾸고, 복수를 꿈꾸니까 인간일지도 모른다. 흔히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지만, 그 멋진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데가 우리나라 정치판이다. 이명박 정권으로 권력이 교체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이번에는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이러저러한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때마다 정치 보복이란 말들이 무성했다. 현 집권세력이 '사법 3법'을 위헌 논란 속에서 강행 처리한 것이나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조희대 대법원장을 법왜곡죄로 고발한 것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에 대한 보복 심리가 작용했을 거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검찰개혁도 다르지 않다. 많은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밀어붙인 공소청법과 중수청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오는 10월 검찰청은 78년 만에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검찰청 폐지를 주도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검찰개혁을 입에 올리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떠오른다"며 검찰개혁이 정치 보복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말과 글에서 주군의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과 거악(?)을 때려눕힌 승리감이 묻어난다.
사기가 떨어지고 의욕을 잃은 검사들이 줄사표를 내고 있다. 조직을 지키는 검사 상당수는 특검에 차출된다. 일 할 검사가 없어 전국 10개 주요 지청이 사실상 파산 상태라고 한다. 검찰을 증오하는 현 집권세력의 특검 사랑이 유별나다. 3특검, 상설특검에 2차 종합특검 등 현재 가동 중인 특검만 다섯 개다 보니 '특검 블랙홀'이란 말도 회자된다. 위험 수위에 다다른 인력 공백으로 사건 처리 지연이 급증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집권세력은 늘 정의를 부르짖기 마련이지만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예외없이 같은 편에는 봄바람이고 상대편에는 가을서리 같다. 권력이 요구하는 선택적 정의에 검찰은 한결같이 '잘 드는 칼'로서 영합했다. 검찰의 그같은 행태는 스스로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런 검찰이 사라진들 하등 아쉬울 게 없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집권세력이 밀어붙인 검찰 해체가 고작 비운에 간 주군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게다가 졸속과 과잉에 의한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피해가 돈 없고 빽 없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면, 이런 검찰개혁을 과연 노 전 대통령이 흐뭇해 할지 궁금하다. 불의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그건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검찰개혁을 넘어선 검찰 해체, 증오와 복수심이 앞선 검찰 죽이기는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늘의 도리를 거슬러서였을까? 오자서는 훗날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던 구천의 이간계에 빠진 오나라 왕 부차의 명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고 시신이 강물에 버려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오자서가 죽은 후 채 10년도 되지 않아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부차도 자결하고 오나라도 멸망했다. 장비는 관우의 복수를 서두르다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했고, 유비는 도원결의를 맺은 두 아우의 복수에 집착하다 대업을 그르쳤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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