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하노이서 신(新) '자유롭고 열린 인·태' 외교 발표… "경제안보가 곧 외교"

  • 아베 FOIP 10년 만에 개정… 공급망·안보 중심으로 무게 이동

  • 日 언론 "미국 부재 속 일본 단독 부담" 회의론도

베트남을 방문 중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일현지시간 하노이국립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베트남을 방문 중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일(현지시간) 하노이국립대학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베트남을 방문 중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외교정책 연설을 통해 새로운 외교방침을 천명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6년에 제창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을 10년 만에 개정한 것으로,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 등 경제안보 중심으로 무게를 확실하게 옮겼다는 평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하노이국립대학에서 270명의 학생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했지만 FOIP의 타당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이상으로 주체적으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중요물자 공급망 강화 등 경제 생태계 구축 ▲민관 합동의 신 경제 영역 공동 개척과 규범 공유 ▲안보분야 연계 확충 등을 신 FOIP의 3대 중점분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다카이치 총리는 해저케이블·통신위성 등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FOIP 디지털 회랑 구상'으로 추진하고, 우방국 군에 무기·장비를 무상 제공하는 '정부안전보장능력강화지원(OSA)'의 대상국과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확대 절차의 조기 개시도 천명했다.

이번 구상에 대해 일본 언론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개정이 미국과 중국에 의한 "힘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흔들리는 "법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안보를 축으로 우방국과의 실무협력에 무게를 두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닛케이가 주목한 것은 2016년 아베 전 총리와의 결정적 차이다. 아베 전 총리가 FOIP를 처음 제창했을 때만 해도 일본은 "위압으로부터의 자유", "법의 지배",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미일공통의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FOIP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이 관세를 사용해 각국을 '위압'하게 됐다"는 것이 닛케이의 진단이다. 이 신문은 미국이 이란과의 군사충돌에서 국제법 경시의 자세를 드러내며 호르무즈 해협을 '역(逆)봉쇄'한 것으로 평가했다. 위압의 가해자가 돼서는 안 될 미국이 위압의 주체로 변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국의 중요물자 수출규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겹치면서 각국이 "힘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경제·사회·안보 모든 면에서 "자율성"과 "강인성(强靱性)"을 갖춰야 한다고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신 FOIP가 "경제·군사 양면에서 위압적 움직임을 강화하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의 저가 인공지능(AI)이 여론 공작에 사용될 우려를 거론하며 동남아 각국과 현지어 AI 공동 개발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전기자동차(EV)·철강 등 과잉생산이 지적되는 중국을 겨냥해 "부당하게 저가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며 시장 왜곡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는 또한 지난달 일본 정부가 발표한 100억 달러(약 14조 7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 패키지 '파워 아시아(Power Asia)'를 다카이치 외교의 '핵심 수단'으로 부각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국면에서 동남아 각국에 대한 원유 조달 지원 등에 긴급 활용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파워 아시아가 FOIP를 구현화하는 "실탄"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외무성 간부는 "규모로 중국에 이길 수 없는 만큼 상대국이 필요한 점을 맞춤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추상적 가치관 호소가 아닌 구체적 지원책으로 동남아의 마음을 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은 신 FOIP의 실효성에 회의도 드러냈다. 요미우리·아사히·닛케이 세 신문이 공통적으로 짚은 약점은 미국의 부재(不在)였다.

가장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은 요미우리였다. 이 신문은 "중동정세 대응에 쫓기는 미국은 지금 인도태평양 지역에 주력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협력이 없으면 총리의 구상은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아사히도 2기 트럼프 정권이 "국제법을 무시한 이란 공격에 나서는 등 자유나 법의 지배를 부정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짚었다. 앞서 닛케이의 "미국이 위압의 주체로 변했다"는 진단까지 합치면, 세 신문은 각각 미국의 물리적 부재(요미우리), 이념적 배신(아사히), 위압 주체화(닛케이)를 같은 약점의 다른 얼굴로 짚은 셈이다.

두 번째 약점은 발표 무대인 베트남조차 거리 두기를 할 가능성이다. 아사히가 인용한 이시즈카 후타바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베트남은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참가하면서도 국내 주요 정책 문서에서는 미국이 제창한 표어인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 자체를 피해 왔다. 인접한 사회주의국이자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의식한 행보로, 신 FOIP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밸런스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 번째 약점은 동남아 각국의 분화 양상이다. 요미우리는 안보 협력에서 "동남아 각국 간에 온도차가 있다"며, 필리핀이 일본의 불용 무기·장비 수입을 검토하는 반면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이후 중국과 외교·국방 장관 회담(2+2)을 잇따라 열었다는 점을 들었다.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단일 대오'가 아니라 갈래갈래 분화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정권의 신 FOIP는 외형상 화려한 출발을 알렸지만, 미국이 빠진 자리에서 일본 혼자 우방국들을 묶어 내야 하는 부담은 가볍지 않다. 베트남의 신중한 거리 두기, 동남아의 분화 등 첫발부터 만만치 않은 변수가 드러났다. 일본이 미국의 부재 속에서 동지국 외교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ASEAN 외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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