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더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생산적 금융이 얼마나 모호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금융권의 화두는 단연 '생산적 금융'이다. 가계대출은 조이고 기업 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해 자금 공급을 확대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향후 5년간 500조원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1분기에만 36조원 넘는 자금이 집행됐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상황에서 과거처럼 담보와 보증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방식은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생산적 금융의 정의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공통된 기준이 없으니 은행마다 생산적 금융 실적으로 평가하는 범위가 모두 다르다. 당국이 자율성을 이유로 명확한 세부 지침을 제시하지 않다 보니 각 은행이 자체 기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적 금융의 취지는 담보 중심의 대출에서 벗어나 혁신·첨단 산업으로 자금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생산적 금융은 은행 간 숫자 경쟁에 불과하다. 기준이 모호할수록 은행의 판단에 따라 생산적 금융 실적을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기업대출 총량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기존에 나가던 우량기업 대출을 이름만 바꿔 실적으로 잡거나, 부동산 담보 중심의 기업대출을 생산적 금융으로 분류한다면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생산적 금융이 단순한 구호와 숫자 놀음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실적부터 앞세우면 현장은 숫자를 맞추기 위해 움직인다. 어떤 대출이 생산적 금융인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자금 공급을 인정할 것인지, 단순 공급액과 실제 효과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정리되지 않으면 평가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은행에만 위험을 떠넘겨서는 정책이 지속될 수 없다. 사후 책임과 면책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은행에 모험을 요구하면서 부실이 나면 책임만 묻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현장이 움직이기 어렵다. 실패 가능성이 큰 영역에는 정책금융, 보증, 세제 지원 등 정부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생산적 금융은 필요하다. 부동산과 담보 중심의 대출에만 자금이 집중되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좋은 방향일수록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한다. 기준 없는 생산적 금융은 숫자 부풀리기로 흐르기 쉽고, 숫자 중심의 생산적 금융은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돈의 물길을 바꾸자는 말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 돈이 실제 성장과 혁신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누가 더 큰 목표치를 내놓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을 생산적 금융으로 볼 것인지, 어떤 돈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인지, 부실이 났을 때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숫자가 아니다. 더 명확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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