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깜짝 성장'의 청구서, 이제 남은 건 금리 인상

 장수영 경제부 기자
장수영 경제부 기자
 

"반도체 업황이 좋을 것이라고 다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좋아질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를 발표하며 내놓은 이 한마디는 우리 경제가 마주한 뜻밖의 안도감을 상징한다. 1분기 우리 경제는 전 분기 대비 1.7% 성장이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이 수치는 한국 경제가 가파른 성장 국면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내용을 뜯어보면 반전은 더해진다. 그간 내수 부진의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민간소비마저 전 분기 대비 0.5% 증가하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반도체가 성장세를 견인하고, 대내적으로는 민간소비가 완만하게 반등 흐름을 보이며 경기 회복 기대를 키우는 모습이다.

다만 화려한 성장률 이면에는 구조적 한계도 뚜렷하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이번 1분기 성장에서 제조업의 기여도가 절대적이었고, 그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 약 55%에 달했다. 1.7% 성장률 중 절반 이상이 반도체 한 품목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실제 반도체를 제외한 1분기 제조업 생산은 0.2% 늘어나는 데 그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반도체 호황을 제외하고 중동 전쟁으로 고유가가 지속되는 상황만 고려하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에 0.9%포인트 하락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고용과 내수, 자영업 등 경제 전반으로 고르게 확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번 성장률 지표는 한은의 고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간 한은은 미국과 금리 차 확대, 환율 불안 등에도 기준금리를 2.50%에서 7차례 연속 동결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한계기업 증가와 가계부채 부담, 내수 경기 둔화 우려 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높은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방 압력이 동시에 확인되면서 동결 기조를 유지할 명분은 한층 약해졌다. 성장률 개선으로 경기 하방 리스크가 완화된 반면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과 공급발 물가 압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부담도 여전하다. 깜짝 성장은 한국 경제에 안도감을 안겼지만 동시에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 가능성도 키웠다. 경기가 예상보다 견조하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이제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은 성장 방어보다 물가와 환율 안정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최근 유상대 한은 부총재가 정책 신호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런 변화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사이클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긴축의 부담이 경제 전반에 균등하게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 중심 성장과 달리 고용시장 둔화, 취약 차주 부담,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 악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올해 1분기 평균 실업자가 5년 만에 다시 100만명대에 진입하는 등 고용시장이 싸늘한 가운데 낙수효과마저 일부 산업에만 집중되는 현실은 한은에 더욱 정교한 통화정책을 요구한다.

통화정책은 결국 더 큰 리스크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성장률 상승과 물가 상방 압력이 동시에 확인된 이상 한은이 기존 동결 기조를 이어갈 여지는 한층 좁아졌다. 1.7%라는 숫자는 단순한 성장률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한은이 더 이상 기존 동결 기조에 머무르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불가피하더라도 취약 차주와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된 기업에 대한 정책적 보완 장치는 병행될 필요가 있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의 메시지는 경기 진단을 넘어 길었던 동결 국면의 종료와 긴축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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