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러한 장수화가 짧아진 노후준비 기간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교육기간 연장으로 입직연령이 늦어졌지만, 정년은 60세 수준으로 머물러 있어 노후준비 기간은 짧아지고 은퇴 이후 기간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생애후반기에 소득이 소진되거나 노후빈곤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특히 건강수명이 72.5세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 고령층은 건강 악화 이후에도 장기간 생활비와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연금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최근 금융시장의 흐름을 보면 전통적 연금상품 확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연금저축의 경우 종신연금 기능을 가진 연금저축보험은 감소하고 연금저축펀드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연금저축펀드 연간 납입액은 2025년을 전후로 연금저축보험을 추월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장기간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수익률 확보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금리와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보수적인 운용만으로는 실질 노후소득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장기분산투자 기반의 실적배당형 자산 확대는 연금자산의 성장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측면도 존재한다.
문제는 투자 확대 자체보다 장수리스크 관리와 종신소득 보장 기능이 충분히 결합되지 못한 채 연금시장이 수익률 경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은 높은 수익률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큰 변동성을 수반한다. 은퇴 직전이나 은퇴 이후 시장 충격이 발생할 경우 고령층 자산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본래 연금은 장수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투자성과 중심으로 이동할 경우 노후소득 안정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들의 자산관리 방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 연금시장은 안정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왔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안정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물가 상승과 시장 변동성을 경험하면서 실질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구조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보장보다 투자 선택권과 유동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연금시장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상품이 적립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고, 은퇴 이후 필요한 인출·관리 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55세 이상 퇴직연금 수급자 중에서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비중은 13% 수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여기에는 충분한 적립금이 형성되지 않아 연금화가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안정적 현금흐름보다 유동성과 자산 통제권을 더 중시하는 인식 변화도 반영돼 있다.
결국 초고령사회는 연금시장에 구조적 딜레마를 안겨준다. 연금의 필요성은 커지는데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과거 방식의 연금상품에 만족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초고령화에 대응해 장기자금을 공급해야 할 연금시장이 자본시장을 견인하기보다 오히려 자본시장 흐름에 영향을 받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의 연금시장은 적립 중심 구조를 넘어 인출기(Decumulation) 중심의 종합 노후자산관리 체계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투자 선택권 확대와 수익률 제고는 중요하지만, 동시에 종신 현금흐름과 노후소득 안정성이라는 연금의 본질적 기능 역시 유지돼야 한다. 특히 장기분산투자 기반의 전문운용체계와 안정적 연금화 기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초고령사회는 연금시장에 거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기존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연금산업은 단순히 "왜 연금이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단계를 넘어 "어떤 연금체계가 초고령사회에 적합한가"를 증명해야 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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