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르무즈, 말라카, 대만해협 그리고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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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집 국립외교원 고문, 前주싱가포르 대사]

최근 중동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 및 통행료 징수문제가 대두되자 국제사회는 다시 한 번 해협(strait)의 전략적 의미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된 문제는 여타 국제 해협이나 소위 조임목(choke point) 지역이라는 곳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은 영해의 범위를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하였다. 이로 인해 그 때까지 국제 항행에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되던 해협 116곳이 연안국의 영해에 포함되었으며 그 결과 자유로웠던 통항권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 해협 연안국과 이용국간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제사회는 국제 항행에 사용되어 온 해협에 대해서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라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관련 해협과 그 상공에서의 선박, 잠수함, 항공기가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통행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 만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과통항권이 거부되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정면으로 부인하게 되는 것으로서 전 세계의 모든 국제 해협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라카/싱가포르 해협으로는 매일 호르무즈 해협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원유와 정제유가 통과한다. 일반 화물 통과량은 호르무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30% 이상과 원유 수입량의 약 90% 역시 이 해협을 통과한다. 더구나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은 폭이 약 39km인데 비해 싱가포르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은 폭이 약 3.7km에 불과해 전략적인 차원에서는 말라카/싱가포르 해협이 훨씬 더 민감한 곳이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말라카 해협에서도 통행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바 있으나 연안국인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의 반발과 자국 내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일단 주장을 거둬들인 바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의 해양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된다면 이들의 태도 역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45% 이상과 수입 원유의 85% 이상이 통과하는 대만 해협은 또 다른 조임목이다. 가장 협소한 곳의 폭은 약 130km이지만 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약 절반가량이 이곳을 지날 정도로 매우 붐비는 통항로이다. 만일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이 고조되거나 무력 분쟁의 발발로 인해 이 해협이 봉쇄될 경우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금번 호르무즈 사태는 해협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처럼 해협에 대해서도 연안국이 통행료를 받을 수는 없는가? 과연 해협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가 통제할 수 있는가?” 통행료의 경우 인위적으로 어느 국가 내에 상업적으로 건설된 수로일 경우 징수가 가능하다.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는 개별 국가의 완전한 영토적 주권 하에 있으며 별도의 국제조약에 따라 통행료를 징수할 권리가 부여되었다. 반면 국제 해협의 경우 영해내의 외국 선박에게 허용되는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보다 훨씬 강력한 권리인 통과통항권이 인정되어 있다. 즉 국제해협은 연안국의 주권적 통제 아래 완전히 놓인 공간이 아니며 국제적 공공재로서 해협 연안국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통항권이 보장된 곳이다.
 
 
물론 현실은 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제법은 규범을 제공하지만, 실제 해협에 대한 통제력은 군사력과 지정학적 논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와 같이 특정 해협 연안국이 해협 내 도서나 그 주변 해양 지형을 군사화하거나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통제를 확장하려 할 경우 국제사회가 합의한 법적 원칙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 한국은 에너지와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해상 무역 국가다. 호르무즈와 말라카 해협을 거쳐 들어오는 에너지 공급이 차단될 경우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의 수출입 물동량 역시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아시아 해상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이 문제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제 해양 질서의 핵심인 항행의 자유와 통항권을 일관되게 지지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및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특정 해협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해군력과 국제 협력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접근이다. 특정 국가의 입장에 편승하기보다는 국제법과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원칙적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국익에 부합한다. 호르무즈, 말라카, 대만해협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규범이 무너지면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는 엄청난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해협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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