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4일 고광헌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초대 위원장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장기간 공백 상태였던 심의 체계가 정상화의 출발선에 섰다. 이번 인선은 단순한 조직 정비를 넘어, 무너진 심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재설계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광헌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전임 체제에서 합의제 원칙이 훼손되면서 심의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약화됐고, 이는 결국 사회적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30전 30패’라는 소송 결과 역시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이는 방미심위가 무엇보다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함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체제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는 위원장의 지위가 민간인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이는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조치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운영 방식의 개선”만으로는 이 문제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다.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위원장 권한을 분산하는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안건 상정, 심의 일정, 제재 수준 등에 대해 특정 인물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합의제 절차를 실질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둘째,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주요 안건 선정 기준과 심의 과정, 결정 이유를 공개함으로써 외부 감시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쟁점이 큰 사안일수록 외부 전문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해 판단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장치가 마련될 때, 정무직 체제에서도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방미심위는 과거와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생산과 유통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하고 있다. 전통적 방송 중심의 심의 기준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따라서 단순히 과거의 절차적 문제를 교정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환경에 맞는 심의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규제 강화’가 아니라 ‘기준의 정교화’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 글로벌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정보, 알고리즘에 의해 확산되는 여론 등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 이용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다층적 논의 구조를 마련하고, 사례 기반의 가이드라인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심의는 더 이상 일회적 판단이 아니라 축적된 기준 위에서 작동하는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
또 하나 분명히 할 점은 방미심위의 역할이다. 이 기관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유가 신뢰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공론장 질서 설계’라는 표현 역시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예측 가능한 판단을 통해 시장과 이용자가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 이해돼야 한다. 즉 사전적 통제가 아니라 사후적이고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신뢰를 유지하는 구조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규제와 자유 사이의 긴장은 생산적인 균형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방미심위가 당면한 또 다른 과제는 장기간 중단된 심의 기능의 정상화다. 누적된 안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졸속 판단이 반복된다면 신뢰 회복은 요원해진다. 속도와 함께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의 판단이 향후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향후 체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결국 방미심위의 미래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얼마나 강하게 규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공정하게 판단할 것인가’다. 제도적 견제, 투명한 절차, 기술 환경에 맞는 기준, 그리고 절제된 개입이 결합될 때, 심의는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고광헌 체제의 출범은 그 가능성을 여는 첫걸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하는 꾸준한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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