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환율이 다시 달러당 160엔 안팎까지 상승(엔화 가치 하락)하며 4월 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대규모 엔 매수 개입 효과가 한 달여 만에 사실상 사라졌다. 중동 정세 불안과 원유 가격 상승, 미국의 금리 인상 관측이 겹치며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일본 당국의 재개입 가능성과 일본은행의 추가 긴축 속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일(현지시간) 유럽·미국 외환시장에서 엔 환율이 달러당 160.09엔 부근까지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엔화 가치는 지난 4월 30일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 매수·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기 직전 기록한 160.72엔에 다시 근접했다.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는 11조 7349억 엔(약 112조4545억원)에 달했다.
엔화 약세가 다시 심해진 배경에는 달러 강세가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교전 종식 협상에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외환시장에서는 안전자산인 달러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원유 가격 상승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진 데다, 미국 경기의 견조함까지 맞물리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금리 인상 관측도 엔화 매도·달러 매수를 부추기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6월 회의에서 한 차례 금리를 올리더라도 엔저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이와시타 마리 금리전략가는 "한 차례 금리 인상으로는 엔저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며 시장의 관심이 다음 인상 시기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의 현재 정책금리는 0.75%다. 일본은행은 중립금리를 1.1~2.5%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외환시장에서는 이 범위의 중간인 1.8% 안팎까지 금리를 끌어올리는 속도가 엔화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은행이 시장의 요구만큼 강한 긴축 신호를 내기 어렵다는 점도 엔화 약세의 배경이다. 닛케이는 아시아계 헤지펀드 매니저를 인용해 우에다 총재의 발언이 "무엇이든 신중한 일본은행답다"며, 금융완화를 선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행이 물가 대응에 늘 뒤처진다는 인식이 해외에 이미 퍼져 있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만으로는 엔화 강세 재료가 되기 어려워졌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엔화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분위기는 약하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5월 중순 엔화 중기 전망을 '약세'에서 '중립'으로 올리고, 2026년 말 엔화 환율 예상치를 종전보다 5엔 낮춘(엔화 가치 상승) 달러당 152엔으로 제시했다. 영국 LSEG가 집계한 증권사 등 약 40곳의 전망 중앙값도 2026년 말 달러당 154엔으로, 현재에 비해서는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닛케이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엔화 매수가 '저평가의 함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뱅가드자산운용의 알레스 쿠트니는 일본은행이 이달 금리를 올린 뒤에도 반년에 한 번꼴 인상에 그칠 것이라며, 엔화 가치가 달러당 170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당국의 재개입 가능성이 오히려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역설도 나타나고 있다. 당국의 개입 가능성 때문에 투기세력이 노골적으로 엔화 매도에 나서기는 어렵지만 일본 수입기업과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장기 투자자들은 엔화 반등을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달러 매수에 나서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낮은 상황에서는 금리 차익을 노린 엔 캐리 거래도 확대되기 쉽다. 저금리 통화인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나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흐름이 엔화 약세 압력을 다시 키우는 구조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5월 26일 기준 투기세력으로 분류되는 비상업 부문의 엔화 순매도는 11만 4667계약이었다. 엔화 환산으로는 약 1조 4000억 엔 규모로, 개입 직전의 약 10만 계약을 웃돌며 2024년 7월 이후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엔화 약세는 일본은행의 물가 고민도 깊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행이 정부 보조금과 감세 효과의 영향을 걷어내고 산출한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공식 지표상 물가 상승률은 둔화했지만, 에너지 보조금과 교육 무상화 등 정부 대책의 영향을 빼면 물가 압력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엔화 약세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일본은행은 한층 강한 긴축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3일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환율 변동에 대해 "필요에 따라 언제든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달러당 160엔 안팎이 일본 당국의 재개입 여부를 가늠하는 선으로 다시 의식되고 있다. 다만 달러 강세와 미·일 금리차, 원유 가격 상승이 동시에 엔화 약세를 압박하는 만큼, 개입만으로 흐름을 꺾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강하다. 닛케이는 한 외환 딜러를 인용해 "일본은행이 정책 대응이 뒤처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상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엔화 강세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 달 만에 160엔대로 되돌아온 엔화는 일본 당국이 환율과 물가, 금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시험대에 다시 올랐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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