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역사와 종교의 유령, 그리고 전술적 '유령의 속삭임'에 흔들리는 이란전쟁
아브라함 곽 입력 2026-04-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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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 만나야 한다
중동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 미사일과 전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식 회담장의 악수, 선언문에 찍힌 문장, 외무장관의 발언만으로도 다 읽히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기록되지 않는 압박이 있고, 보이지 않는 조율이 있으며, 배후에서 판을 흔드는 목소리가 있다. 이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 바로 ‘유령의 속삭임(Ghost Whispering)’이다. 공식적인 회담이나 문서의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공식적 소통과 압박, 심리전과 정보전, 그리고 강대국의 ‘보이지 않는 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표현은 단지 수사가 아니다. 중동 현대사의 적지 않은 갈등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의해 증폭돼 왔다. 정상들이 공개적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비공식 채널에서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오간다. 직접 전쟁을 말리지 않으면서 특정 방향으로 협상을 유도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루머를 흘려 상대 지도부 내부를 흔들며, 대리 세력을 앞세워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결과만 취하려 한다. 지금의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 역시 그런 구조 위에서 움직여 온 전쟁이다.
중동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가장 기초적인 개념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유대인, 유대교, 이스라엘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대교는 종교이고,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거나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집단 개념이며, 이스라엘은 1948년에 세워진 국가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치면 국제 문제는 곧바로 증오와 편견의 언어로 무너진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유대인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자는 정치적 비판이지만, 후자는 반유대주의라는 위험한 혐오로 떨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는 분명 아시아에 속한다. 지중해 동쪽 끝, 중동 한가운데 있으며, 북쪽으로 레바논, 동쪽으로 시리아와 요르단, 남서쪽으로 이집트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정치·문화적 정체성은 상당 부분 유럽에 가깝다. 국민 상당수가 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 또는 그 후손이고, 국제 스포츠 질서에서도 이스라엘은 유럽 축구연맹(UEFA) 소속이다. 유로비전에도 유럽 국가 자격으로 참가한다. 말하자면 지리는 중동인데, 정치와 문화는 서유럽적 성격을 함께 지닌 독특한 국가다. 이 주변성과 이질감은 아랍권의 집단 심리에 적지 않은 긴장을 낳아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국가적 행동 원리를 설명하는 가장 큰 열쇠는 문화적 정체성보다 오히려 지리적 취약성과 역사적 공포에 있다. 국토는 좁고, 가장 잘록한 허리 부분은 폭이 10~15km 안팎에 불과하다. 경계선이 한 번 뚫리면 국토가 두 동강 날 수 있는 구조다. 가자지구에서 텔아비브까지의 거리도 대략 70km 수준이다. 이런 조건 아래서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은 자연히 ‘위협이 현실화되기 전에 먼저 제거한다’는 선제 대응 원칙으로 굳어졌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 국경지대에 병력을 집결시키자 이스라엘이 먼저 공습을 감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등 핵심 지역을 장악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안보 강박은 단순한 군사 교리의 산물이 아니다. 유대인의 역사적 체험이 만들어 낸 집단적 생존 본능이다. 유대인들은 원래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았으나,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그 뒤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곳곳에서 살아가며 반복적으로 박해를 겪었다.
1290년 영국 추방, 1492년 스페인 추방, 제정 러시아 시기의 학살과 박해, 그리고 20세기 홀로코스트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나라가 없을 때 소수자는 쉽게 희생양이 된다는 냉혹한 역사다.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이 학살된 경험은 유대인 사회에 “스스로를 지킬 국가가 없으면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깊게 새겼다.
문제는 그들이 ‘돌아가려 한 땅’이 비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역사와 성경적 기억 속에서 그 땅은 약속의 땅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이 약속됐다는 서사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과 결합해 왔다. 더구나 고대 이스라엘 왕국과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고고학적 유적은 이 기억에 현실의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2000년의 공백 동안 그 땅에는 이미 아랍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 곧 “우리 조상들의 땅”이라는 기억과 “우리가 수백 년째 살아온 삶의 터전”이라는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갈등을 키운 것은 제국의 이중 언어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던 영국은 한편으로는 아랍인들에게 독립 국가 수립을 지지할 듯한 신호를 보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의 고향 건설을 지지했다. 같은 땅을 두 집단에 모두 약속한 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의 충격 속에 국제사회는 유대인 국가 건설에 힘을 실었고,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의결했다. 유대인 측은 받아들였고, 아랍 측은 거부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라크·레바논 등 아랍권 국가들이 전쟁에 돌입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독립전쟁으로 기억한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나크바’, 곧 대재앙이라 부른다. 이 과정에서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일부는 피란길에 올랐으며, 일부는 강제로 축출됐다. 이들의 후손이 오늘날 가자지구와 요르단, 레바논의 난민촌에 살아간다. 같은 사건이 한편에는 건국의 신화로, 다른 한편에는 추방의 상처로 새겨졌다. 중동의 오늘은 바로 이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 위에 서 있다.
이스라엘이 왜 오랫동안 전쟁을 멈추지 못했는가를 물을 때, 우리는 흔히 현재의 군사 행동만 본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국가는 늘 ‘다시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해 왔다. 그래서 위협을 기다리지 않는다. 1981년 이라크 핵 원자로를 공습했고, 2007년 시리아 핵시설을 타격했으며, 이란 핵 과학자들에 대한 연쇄 암살과 사이버 공격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스라엘의 논리는 한결같다. 핵을 가진 적대 세력이 생기기 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침략의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계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배후에 있는 이란을 더 큰 전략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강경 노선을 유지해 왔다. 이란 지도부의 반이스라엘 발언은 단순한 외교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지역 곳곳에 대리 세력을 구축하는 전략과 결합됐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이란의 자금·무기·훈련·정치적 후원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세력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지도를 펼쳐 보면 구조는 명확하다. 북쪽 레바논에는 헤즈볼라, 남서쪽 가자에는 하마스, 멀리 예멘에는 후티가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이란이 놓여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사방에서 조여 오는 대리 포위망’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레바논을 치는 것도, 시리아를 공습하는 것도, 가자에서 하마스를 제거하려는 것도, 결국은 이란의 전략적 손발을 끊는 전쟁으로 이해한다. 이는 바로 ‘유령의 속삭임’의 군사적 형태다.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 책임은 흐리고 영향력은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결백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스라엘 역시 오랜 세월 비공식 작전, 막후 협상, 비밀 공작, 정보전을 적극 구사해 왔다. 암살과 사이버전, 제한적 공습과 특수작전, 배후 외교와 강대국 설득은 모두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일부였다. 즉,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비난하지만, 실은 같은 방식의 그림자 전쟁에 함께 익숙해진 국가들이다. 두 나라 모두 유령의 속삭임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유령의 속삭임을 활용해 온 셈이다.
전쟁의 명시적 전환점은 2024년과 2025년, 그리고 2026년에 연이어 나타났다. 이전까지 이란과 이스라엘은 주로 대리전을 통해 충돌했다. 그러나 2024년 이란이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대규모로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직접 발사하면서 금기가 깨졌다. 2025년에는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직접 타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2026년 2월 28일 전후의 국면에서 양측 충돌은 사실상 전면전 양상으로 번졌다. 미국까지 개입하면서 전쟁의 범위와 파장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란 지도부와 혁명수비대 지휘부, 방공망과 미사일 기지, 핵 관련 시설이 타격 대상이 됐고, 이란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미군 기지와 걸프 지역 국가들까지 위협권 안으로 들어갔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급격히 치솟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길목이 흔들리자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두바이 등 중동 금융 허브의 비상 운영,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조정과 대피 논의는 이 전쟁이 결코 지역 분쟁에 그치지 않음을 말해 준다. 한 국가의 미사일이 다른 국가의 안보만 흔드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오늘의 전쟁은 에너지, 해운, 외환, 자본시장과 함께 움직인다. 총성은 중동에서 울리지만 파장은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가계와 기업 대차대조표에까지 번진다.
그렇다면 왜 평화는 이토록 멀기만 한가. 많은 이들이 “그냥 땅을 나눠 두 나라를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문제를 들여다보면 사태가 얼마나 복잡한지 금세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에겐 성전의 터전이며, 이슬람에겐 무함마드 승천의 기억이 깃든 성지이고, 기독교에겐 예수의 수난과 부활이 각인된 거룩한 도시다. 세 종교의 핵심 성지가 걸어서 닿을 거리 안에 모여 있는 도시를 어느 한쪽이 온전히 양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하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 국가의 수도로 요구한다. 협상은 이 지점에서 늘 멈춰 섰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가 세워져야 할 지역 곳곳에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 이미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주민이 그곳에 정착해 있다. 이를 한꺼번에 철수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내부 역시 하나의 지도 체제로 정리돼 있지 않다. 가자는 하마스가, 요르단강 서안은 파타 중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실질적으로 나눠 통치해 왔다. 이스라엘이 “도대체 누구와 최종 협상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국가 해법은 원칙의 언어로는 여전히 살아 있으나, 현실의 언어로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미국이 왜 늘 이스라엘 편에 서느냐는 질문도 자주 제기된다. 이를 단순히 ‘유대인 로비’ 하나로만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축소다. 냉전 시기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핵심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스라엘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아랍권 군대와 실전에서 맞붙으며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은 미사일 방어, 드론, 사이버전, 정보전에서 미국과 깊게 연동된 동맹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스라엘의 질적 군사 우위(QME)’를 법과 정책의 틀 안에 두고, 중동에서 어느 국가도 이스라엘보다 우월한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관리해 왔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자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설계와 제도적 보증 위에 구축된 질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중동 질서는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아랍 대 이스라엘’ 구도가 선명했다면, 이제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국가들’과 ‘이란 및 그 연계 세력’의 대립 구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공식 수교한 것은 그 상징적 장면이었다. 사우디와 UAE, 바레인 등 걸프 국가들에게 이란은 단지 먼 나라가 아니라, 자국 안보와 에너지 시설, 해상 수송로를 위협하는 현실적 변수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국가 생존의 계산은 때때로 연대의 전선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대리전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유령의 속삭임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미국이 뒤에서 설계하고, 파키스탄이 이슬람권 내부의 복잡한 정서를 매개하며, 각종 특사와 비공식 채널이 주변을 맴도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 수 없다. 대리 세력 뒤에 숨고, 강대국의 우산 아래서 상대를 우회 압박하는 방식은 오히려 전쟁을 길게 끌 뿐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이제 직접 만나야 한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무려 47년 동안 두 나라는 정상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적대의 언어가 체제를 규정하고, 상호 부정이 외교의 전제가 돼 왔다. 그러나 역사는 영원한 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적대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습관이 된다.
지금 중동이 위험한 이유는 서로를 미워해서만이 아니라, 서로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구조를 깨야 한다. 미국도 더는 중동의 갈등을 군사적 관리 대상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파키스탄 역시 이슬람권 내부의 상징 정치와 핵 억지 질서라는 측면에서 결코 방관자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전쟁을 끝낼 주체는 외부가 아니라 당사자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 만나야 한다. 핵 문제, 대리 세력 문제, 레바논과 시리아, 가자와 예루살렘 문제를 모두 한 번에 풀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직접 대화의 채널만큼은 열어야 한다.
중동 평화는 선언문 한 장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상처를 인정하고, 상대의 공포를 이해하며, 역사와 종교의 유령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유대인의 공포는 허구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상실 역시 허구가 아니다. 이란의 반서방 기억도, 이스라엘의 생존 강박도 모두 현실의 역사에서 나왔다.
그러나 과거의 고통이 미래의 파괴를 영원히 정당화할 수는 없다. ‘유령의 속삭임’은 외교의 현실을 꿰뚫는 말이지만, 그것이 외교의 미래가 돼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아니라, 공개된 대화가 역사를 움직여야 한다. 막후의 조종이 아니라 정면의 협상이 필요하다. 대리인의 미사일이 아니라 당사자의 언어가 먼저 오가야 한다. 그것이 세계 평화와 공존공영을 향한 첫걸음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이제 직접 만나야 한다. 그것이 47년의 절대적 적대 관계를 끝내는 길이며, 중동을 넘어 세계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길이다. 역사와 종교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인간은 유령보다 더 높은 이성을 가질 수 있다. 전쟁을 길게 끌어온 보이지 않는 속삭임의 시대를 끝내고, 책임 있는 직접 대면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