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귀천(죽음)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언론인 김진의 찰나의 죽음 — 종교는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고,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다

한 시대의 언론인이 또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떠났다. 김진. 그는 평생 문장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했고, 논리로 권력과 시대를 해부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언어의 여정은 결국 한 장의 짧은 유서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길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무겁고, 더 본질적이었다.


그는 기자로 출발했다. 코리아타임스에서 언론의 기초를 다졌고, 이후 중앙일보로 옮겨 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을 거치며 시대의 중심을 통과했다. 국제정치와 한국 정치의 접점에서 그는 냉정한 시선과 분명한 언어로 자신의 위치를 구축했다. 2006년부터 약 10년간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그는 단순한 기사 작성자를 넘어, 시대를 해석하는 ‘논객’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글은 종종 날카로웠고, 때로는 단정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의 혼탁함 속에서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고, 다시 방송과 유튜브로 돌아와 대중과 호흡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분명히 한 진영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지지와 비판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이름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고故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언론인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세상을 향해 말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자신에게 말을 건넬 상대는 줄어든다. 특히 시대가 양극화될수록, 논객의 세계는 더욱 좁아진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인간적 거리로 이어지고, 그 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는 점점 더 고립된 좌표 위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 어떤 논설보다도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삶의 동력을 잃었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개인적 사정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고립시키고, 정신의 균형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다.


그가 남긴 유서는 짧지만, 세 가지의 핵심을 담고 있다. 첫째, 불안. 둘째, 사과. 셋째, 감사다.


“틀린 사실과 잘못된 논리가 혹시 일부 있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이 문장은 한 평론가의 마지막 윤리 선언이다. 평생을 논리로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사과’라는 점은, 언론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 언론은 완전할 수 없고, 평론은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오류를 인식하고 책임지는 태도다. 그는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언어를 돌아보았다.


또한 그는 구조 관계자들에게 죄송함을 표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자신의 선택이 타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끝까지 사회적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장기기증을 언급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타인을 살리는 선택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남기려는 의지,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사건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석 유영모는 말한다. “사람은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뜻으로 산다.” 삶의 동력이 사라졌다는 그의 고백은 곧 ‘뜻의 붕괴’를 의미한다. 인간은 물질이 아니라 의미로 살아가는 존재다. 의미가 무너지면, 생은 버티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천부경은 말한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시작은 있으나 시작이 없는 하나. 인간의 생은 시작과 끝을 가지지만, 그 본질은 순환이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이행일 뿐이다.

성경에서도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초월의 문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유한을 인식하고, 그 너머를 사유한다.


금강경은 더욱 단호하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형상은 허망하다. 삶과 죽음, 명성과 비판, 옳고 그름조차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 세 경전은 서로 다른 언어로 하나의 진실을 말한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타인의 평가인가. 그것들이 무너질 때, 우리는 여전히 서 있을 수 있는가.

언론은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진리는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존재에 대한 성찰을 포함한다. 한 언론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마지막 문장은 남아 있다. 사과와 감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고백.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문장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읽으며,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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