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외교의 전면에 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 - 권력 동선의 변화 읽기

외교는 원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기술이다. 국가 간 협상은 보이지 않는 채널과 축적된 신뢰, 그리고 역할이 나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외교부는 관계를 만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해를 조율하며, 대통령실은 그 전체를 관리하는 구조다. 이 분업은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전문성을 분산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원외교의 전면에 등장한 최근의 흐름은 분명 이례적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일정이 중동으로 확장되고, 예정에도 없던 카타르 방문까지 이어진 과정은 단순한 외교 일정의 변동이 아니다. 외교의 중심에 서지 않던 권력이 전면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이번 카타르 방문은 그 상징성이 특히 크다. 카타르는 한국 LNG 수입의 핵심 축이며,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시장의 불안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까지 겹치면서,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경제 영역에 머물지 않고 안보의 문제로 확장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최고위급 접촉을 진행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원외교는 더 이상 실무 라인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변화는 충분한 현실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의 에너지 시장은 과거와 다르다. 가격 경쟁이 아니라 확보 경쟁으로 전환됐고, 공급망은 정치와 군사 변수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국가 간 계약은 단순한 경제적 교환이 아니라 전략적 관계의 일부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외교의 속도와 무게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누가, 언제, 어떤 수준으로 움직이느냐가 협상의 결과를 좌우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예방했다 사진카자흐스탄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예방했다. [사진=카자흐스탄 대통령실 제공]


이 지점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의 전면 등판은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첫째는 속도다. 위기 상황에서 외교는 타이밍 싸움이다. 기존의 절차를 거치는 방식보다 권력의 핵심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훨씬 빠르다. 둘째는 무게다. 국가 간 협상에서 상대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상대가 인식하는 정치적 신호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셋째는 통합이다. 에너지 문제는 외교, 산업, 안보가 얽힌 복합 영역이다. 여러 부처가 나눠 대응하는 구조보다 단일 창구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처럼 이번 행보는 위기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합리성을 갖는다. 실제로 과거에도 에너지 위기나 금융 위기 국면에서는 정상 간 직접 협상, 이른바 ‘톱다운 외교’가 작동하며 단기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가 적지 않다. 특정 시점에서 권력의 집중은 오히려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전면 등장’이 곧바로 ‘시스템의 우회’나 ‘제도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교는 본질적으로 다층적 구조를 갖는다. 전면에 나선 인물 뒤에는 여전히 외교부와 산업부, 그리고 실무 조직의 치밀한 기획과 협의가 존재한다. 비서실장의 행보는 이 구조를 대체하기보다는 특정 국면에서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일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이러한 방식이 일회성 대응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만약 권력 핵심의 직접 개입이 반복되면서 실무 라인의 역할이 점차 축소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전문성의 축적이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이 경험이 시스템에 흡수되고 제도화된다면, 외교 역량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권력 동선’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원래 전면에 나서는 자리가 아니다. 조율과 보좌가 핵심 기능이다. 그런 자리가 외교의 최전선에 등장했다는 것은 단순한 역할 확장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로 읽힌다. 정책의 기획과 집행이 하나의 축으로 압축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압축은 위기 상황에서는 강점이 된다. 빠른 판단과 일관된 메시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가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권력의 집중은 정책의 다양성과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외교의 장기적 신뢰를 흔들 수 있다. 외교는 단기 성과보다 지속성이 중요한 영역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관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제도적 안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원외교의 본질 역시 이 논점을 뒷받침한다. 에너지 협력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다. 카타르와의 LNG 관계는 수십 년에 걸친 신뢰와 상호 의존의 결과다. 이러한 관계는 특정 시점의 ‘깜짝 방문’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관리와 축적을 통해 유지된다. 외교는 결국 시간의 함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다. ‘정치적 리더십이냐, 제도적 시스템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두 요소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의 문제다. 정치적 리더십은 방향과 결단을 제공해야 하고, 시스템은 이를 실행하고 축적해야 한다. 이 둘이 분리되면 외교는 흔들리고, 결합되면 외교는 강화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권력 핵심의 개입은 명확한 목적과 범위를 가져야 한다.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경우, 제도의 균형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둘째, 실무 시스템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전면에 나선 정치적 리더십 뒤에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더 깊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단기 성과를 제도화하는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특정 인물의 경험이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외교는 반복적으로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된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외교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시스템만으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어떻게 결합하느냐다.


강훈식 비서실장의 카타르 방문은 분명 중요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누가 갔는가’에만 있지 않다. 그 경험이 어떻게 축적되고,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 흐름이 일시적 대응으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외교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지금 우리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질문은 더 무거워진다.

이 변화는 시스템을 약화시키는가, 아니면 더 강하게 만드는가.

그 답은 앞으로의 선택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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