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더레코드] BDC의 역설?…높아진 증권사 심사문턱에 상장사들 'VC 사모'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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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이미지. [사진=챗GPT]

정부가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가 시행 초기부터 표류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모 자금을 수혈해 기업의 자금줄을 틔워주겠다는 취지와 달리 벤처투자(VC) 업계와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현장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업들이 BDC 대신 VC의 사모 자금으로 도피하는 이른바 '자본조달의 사모화'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17일 BDC 도입 이후 VC와 자산운용사, 증권사들은 관련 상품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BDC는 개인투자자도 소액으로 비상장 벤처·혁신기업에 간접 투자할 수 있는 상장 공모 펀드를 말합니다. 주식을 매수하듯 한국거래소에서 쉽게 사고팔 수 있게 해 개미 투자자에게는 대박의 기회를, 기업에는 원활한 자금 조달을 돕겠다는 게 도입 취지입니다.
 
"규제는 공모급, 보수는 쥐꼬리"…벤처 투자사들 '이중고'에 외면
하지만 좋은 취지와 달리, 실제 주체가 되어야 할 벤처투자 업계의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우선 벤처투자사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물리적 요건'을 호소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BDC 도입 이후 실제로 하려는 곳이 거의 없다"며 "BDC를 하려면 인적·물적 자본 요건을 따로 분리해야 하고, 전산 장비도 따로 써야 하고 층도 따로 써야 하는 등 공모펀드 수준의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누가 선뜻 나서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미 시스템을 갖춘 자산운용사들조차 '수익성' 문제로 고개를 젓습니다. 벤처펀드의 관리보수가 통상 2% 내외인 데 비해, BDC는 상장 펀드 구조상 보수가 1% 미만으로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VC는 "배보다 배꼽(설비 투자비)이 더 커서", 자산운용사는 "책임은 무한대인데 벌이가 시원찮아서" 참여를 꺼리는 실정입니다.
 
증권사의 '변심'…금리 장사와 심사 장벽에 막힌 상장사들
증권사들도 반응이 미적지근 합니다. 특히 정부의 모험자본 활성화 압박이 역설적으로 증권사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증권사들이 새로운 정책 대응에 나서면서 기존 상장사 메자닌(CB, BW) 인수는 오히려 후순위로 밀리거나 심사 문턱이 대폭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로 가는 메자닌 수량이 줄어들었다. 증권사 심사 리스크 쪽에서 더 까다롭게 보고 허들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자꾸 모험자본 하라고 하니까 증권사들이 기존에 있는 걸 하기에도 좀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증권사가 요구하는 고금리와 깐깐한 담보 조건을 맞추며 '을'을 자처하느니, 발행 절차가 유연한 VC를 대안으로 삼는 실리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 끝난' VC들의 역습…"데이터가 증권사 압도"
증권사가 뒷걸음질 치는 빈자리는 BDC가 아닌 VC들의 '사모 실탄'이 빠르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VC들은 해당 기업이 비상장 시절(시리즈 A, B, C)일 때부터 기술력과 파이프라인을 낱낱이 훑어본 데이터를 무기로 증권사보다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VC가 메자닌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된 비결로는 '데이터의 연속성'이 꼽힙니다. IB업계 관계자는 "VC는 해당 회사가 비상장일 때부터 시리즈 A, B, C를 다 따라갔던 곳들"이라며 "이미 공부가 끝난 VC에게는 상장사 메자닌 투자가 증권사보다 훨씬 수월하고 안전한 시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증권사가 리스크를 이유로 거절한 딜을, 기업 히스토리를 꿰고 있는 VC들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자금 집행력을 바탕으로 낚아채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책의 한계…"내러티브만 있고 실질적 도움은 안된다"
결국 정부가 그린 BDC의 청사진은 현장의 리스크 심리와 비용 구조를 간과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선 "정부 정책은 여전히 내러티브만 있고 실제로 숫자로 찍히는 도움은 하나도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자본시장의 한 전문가는 "증권사는 금리 장사에 치중하고 BDC는 규제에 묶여 겉도는 사이, 상장사들의 자금 조달 창구는 점점 더 폐쇄적인 사모 시장으로 편중되고 있다"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자정 작용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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