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각자도생 시대의 연대 의식

공공기관 차량 5부제 시행 첫날인 3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경찰이 운전자에게 우회로를 안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공기관 차량 5부제 시행 첫날인 3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경찰이 운전자에게 우회로를 안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디즈니플러스의 미드 '파라다이스'는 남극권에서 시작된 전지구적 재앙을 배경으로 한다. 빙하 아래 잠들어 있던 활화산이 분화하면서 대기 중으로 막대한 화산재가 퍼지고, 기후 시스템이 붕괴된다. 식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전 세계는 순식간에 생존 경쟁으로 내몰린다.

드라마 속 설정이지만, 인류 전체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은 협력 대신 핵무기를 선택한다. 상대국의 자원을 선점하고 공급망을 끊기 위해 주저 없이 핵버튼을 누른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순간에도 ‘각자도생’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인류 전체가 사라질 수 있는 위기 앞에서 강대국들이 서로를 ‘최악의 무기’로 공격하는 상황은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중동 사태를 보면 드라마와 현실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과 국가는 놀라울 만큼 ‘눈앞의 이익’에 솔직해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며 전 세계가 에너지 충격에 흔들리고 있지만, 정작 사태를 촉발한 당사국인 미국은 책임지는 자세보다 한발 물러서는 선택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며 그 파급 효과를 국제사회에 떠넘기는 모습이다. 국제정치에서 여전히 각자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혼자만 살아남기’의 논리는 국가 간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내부의 사회 공동체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최근 나프타 수급 차질로 종량제 봉투 품귀 우려가 커지자 일부 지역에서는 사재기가 나타났고, 정부가 1인당 판매 제한까지 검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족해질 수 있다는 소식에 개인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혹시 모자랄지 모른다’는 불안이 순식간에 ‘지금 확보해야 한다’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연대’라는 가치는 후순위로 밀린다. 누군가 더 많이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덜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을 멈추기 어렵다. 위기 상황에서는 협력보다 경쟁이 더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택이 누적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분명하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공동체의 결속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결국 시장은 왜곡되고 가격은 불안정해지며, 이러한 불안은 다시 개인의 행동을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제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자원과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수록 협력의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시행 중인 공공 부문의 차량 5부제 역시 논쟁적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는 불편만 키우고 에너지 절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책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위기 상황에서는 개별 효율성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일정 수준의 부담을 나누는 방식이 필요해진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더 강한 ‘연대의 논리’다. 위기일수록 자원을 나누고 부담을 분산하며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합의가 요구된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체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책의 정교함과 현실성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 일괄적 규제가 아닌 예외와 유연성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연대는 강제가 되고, 강제된 연대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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