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인물 이야기|인간·문화·자연]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예술인의 길
아브라함 곽 입력 2026-03-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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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청령포의 바람 속에서 조용히 스러져 간 어린 왕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단종의 죽음은 오래도록 ‘억울함’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그 죽음을 제대로 애도할 수 있는 장례는 끝내 치러지지 못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22일,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444만 명을 돌파하자, 우리 사회에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돌기 시작했다.
“장항준 감독이 500년 전 단종의 장례식을, 엄홍도가 비밀리 치렀던 그 장례를, 이제야 5천만 국민의 국민장(國民葬)으로 다시 치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농담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왜 이토록 깊은 공감을 얻었는지를 정확히 짚어낸 집단적 감각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극이 아니다.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시 불러내되, 위대한 왕이나 비극의 상징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일찍 권력에서 밀려난 한 소년의 외로움과, 그 곁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의 신의(信義)를 통해 ‘공정(公正)’과 ‘신의’라는 오늘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래서 관객은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윤리를 체험한다. 이 영화가 1444만 명이라는 숫자를 넘어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기록 경쟁이 아니라, 시대가 잃어버린 감정에 대한 회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항준 감독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유의 감각으로 이 무거운 이야기를 결코 무겁게만 만들지 않는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고, 긴장과 여백이 공존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김밥천국 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무엇이든 다 해본다는 의미의 농담이지만, 바로 그 폭넓음이 이번 작품에서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대중은 설교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심은 알아본다. 장항준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이 작품이 그의 첫 ‘천만 영화’라는 점이다. 2002년 데뷔 이후 수많은 작품을 거쳤지만, 늘 흥행과 평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던 그에게 이번 성공은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증명이다. 실패와 좌절을 농담으로 버텨온 사람에게 찾아온 늦은 봄이다. 그래서 이 성공은 더 따뜻하고, 더 깊다.
그 곁에는 김은희 작가가 있다. 한국 드라마와 스토리텔링의 지형을 바꿔놓은 이름. '싸인', '유령‘’, '시그널', '킹덤', '악귀'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장르를 넘어선다. 그는 늘 이야기의 중심에 ‘불안’을 놓는다. 미제 사건, 권력의 어둠, 사회적 균열, 보이지 않는 공포. 그러나 그 불안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들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재미를 넘어,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장항준이 사람의 온기와 유머로 관객을 끌어당긴다면, 김은희는 구조와 긴장으로 관객을 붙잡는다. 하나는 체온이고, 하나는 설계다. 이 두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곳을 향한다. 사람의 마음이다.
이 부부의 이야기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시작에 있다. 장항준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영화 '서머 스토리'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실패는 반복되었고, 결혼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은 어려웠고, 주변의 시선은 냉정했다.
그때 한 장면이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김은희 작가가 시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장항준은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이 말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대신 증언하는 말이었다. 예술가는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가 대신 믿어줘야 한다. 그 순간 김은희는 아내이기 이전에,한 예술가의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낸 증인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에서 꽃을 피웠다. 김은희는 먼저 성공했고, 장항준은 뒤늦게 큰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따로 흐르지 않았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걸었지만, 결국 같은 길 위에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더 진실하다. 유쾌한 농담과 티격태격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장항준은 늘 자신을 낮추며 웃음을 만들고, 김은희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결국 인정한다. 웃음 속에 숨겨진 존중, 그것이 이 부부의 본질이다.
결국 장항준과 김은희의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예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재능에서 시작되는가, 아니면 믿음에서 시작되는가. 이 부부의 삶은 분명하게 말해준다. 예술은 재능으로 시작되지만,믿음으로 완성된다.
'왕과 사는 남자'의 1444만 관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감독의 성공이자, 한 부부의 시간이며, 한 시대의 공감이다. 500년 전, 제대로 애도되지 못했던 한 왕의 죽음이 이제야 5천만 국민의 마음 속에서 다시 장례를 치른 것처럼, 이 영화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어떤 억울함과 슬픔을 비로소 보내주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의식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 장항준과 김은희.
그들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끝내 하나의 길을 만든 예술가들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고, 문화이며,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