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정치이야기|진리 정의 자유] '쑥구' 권노갑의 큰 정치, 큰 어른

  • 정동영의 축사에서 다시 읽는 권노갑의 한 세기


3월 6일 오후 4시, 국회박물관의 공기는 단순한 출판기념회의 분위기를 넘어 묘한 긴장과 온기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권노갑 百人 평전』 출판기념회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야 정치 원로와 현직 장관, 전·현직 총리와 국회의장, 오랜 정치 동지와 한때의 경쟁자, 그리고 언론인과 학자들까지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6일 백인평전 기념회에서 김민석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6일 백인평전 출판기념회에서 김민석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권노갑이었다.
연단에 오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은 올해 아흔여섯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했고 걸음은 경쾌했다. 연설을 마치며 그는 공중에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는 20년, 30년 더 살 자신이 있습니다.”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졌다. 그것은 단순한 장수의 선언이 아니라, 한 시대를 버텨낸 정치인의 기백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러나 이날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장면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축사였다. 그는 화려한 수사 대신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을 꺼내 놓았다.


그는 25년 전 청와대 만찬장을 떠올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원탁의 중앙에 앉아 있었고 그 왼편에 권노갑 고문이 있었다. 주변에는 당시 여권 핵심 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동영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꺼냈다.
“대통령님 옆에 계신 권 고문께서 물러나셔야 합니다. 그것이 당을 살리는 길이고 정부가 사는 길입니다.”


순간 만찬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얼굴은 굳었고 권노갑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슬픔이 스쳤다. 정치의 세계에서 이런 말은 사실상 칼날과 같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권노갑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물러나면 대통령과 당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입니다. 나는 운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 글자를 남겼다.
순명(順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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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세월이 흐른 뒤 정동영 장관이 찾아가 고개를 숙였을 때 권노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 의원, 나는 자네의 진정을 이제 알겠네. 이미 나는 자네를 용서했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더 큰 정치를 하게.”

정동영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참다운 거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치에서 용서는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특히 권력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에게 칼을 겨눈 사람을 다시 끌어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권노갑은 그렇게 했다.


이 장면은 한국 정치사에서 작은 사건일지 모르지만 정치의 본질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는다.

권노갑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려면 그의 긴 정치 여정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는 196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그 곁을 지켰다. 김대중 대통령 사후에도 그는 김대중재단 이사장으로 남아 그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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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으로 “김대중 비서실장”이라고 써 달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날 정치 현실에서 보면 낯설게 들리는 말이다. 지금 정치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중심이 되려 하고 이름을 남기려 하며 권력을 움켜쥐려 한다. 그러나 권노갑은 평생 자신을 주연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는 조연의 자리에서 역사를 받쳐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쑥구’라고 불렀다. 전라도 사투리로 어리숙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별명은 역설적이다. 겉으로는 소탈하고 욕심 없어 보였지만 실제의 권노갑은 매우 깊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별명은 ‘용각산’이었다.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사독재 시절 말 한마디가 정치인의 운명을 바꾸던 시대에 침묵은 지혜였고 절제였다.


권노갑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무엇보다 정치의 가장 근본을 지키려 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정치의 기본 원칙과 상식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권력의 중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사적 이익이나 개인적 욕망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진리와 정의와 자유를 지키려 했던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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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권노갑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권 고문이 끝까지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 한 번도 활동비를 요구하거나 인사 청탁을 한 적이 없다.”


권양숙 여사 역시 그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삶은 사람과 신의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일생에 걸쳐 행동으로 보여 준 과정이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권노갑을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불렀고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늘 보살처럼 웃어 넘기는 큰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김부겸 전 총리 역시 권노갑을 후배 정치인을 품어 준 “넉넉한 느티나무 같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누구든지 그 그늘 아래에서 쉬어 갈 수 있는 큰 나무였다는 뜻이다.


박지원 의원은 권노갑을 떠올리면 늘 짠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력에는 대표라는 직책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을 차지하기보다 권력을 지켜 주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평가들은 권노갑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한 시대의 인격적 상징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의 삶을 고전의 언어로 비유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공자가 존경했던 정치가 가운데 주공(周公)이 있다. 주공은 어린 성왕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렸지만 왕위를 탐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차지하기보다 왕조의 질서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중국 고전 『사기』에 등장하는 포숙아도 떠오른다. 관중이 재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면 포숙아는 사람을 알아보고 끝까지 믿은 덕으로 이름을 남겼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한 명이라면 그 지도자를 끝까지 지켜 준 사람도 함께 기억된다.


서양 정치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 미국 정치사에서 루스벨트 대통령 곁에서 국가적 위기를 함께 넘긴 해리 홉킨스 같은 인물들이다. 지도자의 비전을 현실로 이어 준 사람들이다.


권노갑 역시 그런 정치인이었다. 권력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지탱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권노갑 百人 평전』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도 특별하다. 여권 인사뿐 아니라 보수 정치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세월이 흐르며 권노갑에 대한 생각이 존경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진영을 넘어 인간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동양 고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관즉득중(寬則得衆).
관용을 베풀면 결국 사람을 얻는다.


권노갑의 정치 인생은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삶이었다. 그는 상대를 논리로만 설득하지 않았다. 태도로 설득했다. 권력을 통해 사람을 얻으려 하지 않았고 사람을 통해 정치의 기반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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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그래서 그의 정치 인생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그는 대표직 하나 없이도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았다. 직함이 아니라 인품으로 권위를 얻은 것이다.


그의 노년 또한 인상적이다. 그는 아흔여섯의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영문학 석사학위를 마쳤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여전히 공부를 이어 가고 있다. 영자신문을 읽고 운동을 하며 골프를 즐긴다. 최근에는 이글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노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삶. 공자의 말처럼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삶”이다.

나이는 세월의 기록이지만 품격은 훈련의 기록이다. 권노갑의 삶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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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정치에는 전략과 계산이 넘친다. 그러나 정치는 전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덕이 정치보다 더 오래 남는다.


권노갑의 정치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상대를 제거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상대를 사람으로 남겨 두는 정치인이었다.

자신에게 칼을 던진 사람을 끝내 품어 안고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큰 정치다.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자리였다. 정동영 장관의 회고는 그 장면을 여는 문이었다.
그 문을 통해 우리는 정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정치는 단지 권력을 얻는 기술이 아니다.
정치는 사람을 품는 예술이다.

‘쑥구’라는 별명은 소박하다. 그러나 그 삶은 장중하다.
권노갑은 정치의 기본 원칙과 상식을 지키며 살아온 정치인이었다.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인류 정치의 오래된 가치를 지키려 했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백 년 인생은 단순한 개인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의 기록이다.
그리고 훗날 한국 정치사를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권노갑.
끝내 사람을 잃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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