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화려한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현장의 온도가 고스란히 남겨진 이면의 기록들을 주목합니다. 한 작품을 만든 이들의 인터뷰를 입체적으로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들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휴민트' 스틸컷 [사진=NEW]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 영화 '휴민트'는 이 냉혹한 배경 속에서 격돌하는 인물들의 뜨거운 호흡을 담아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긴장감 사이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드는 건 단연 배우들의 '비주얼'이다. 하지만 스크린 위로 흐르는 팽팽한 공기와 달리, 카메라 뒤편에서는 "오그라들까 봐 걱정했다"는 고백과 "난 그냥 걷기만 했다"는 머쓱한 해명이 교차하는 유쾌한 드라마가 써 내려지고 있었다.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은 냉철한 판단력과 기민한 움직임을 가진 그야말로 '야생의 인물'이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 박정민은 캐릭터와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체육관과 러닝 코스를 오가며 자신을 단련했다.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주실 때 '박건'은 남자다운 캐릭터고 액션도 많고 하니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놔야 한다고 이야기 하셨어요. 체육관을 다니면서 단련을 해왔죠.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고 야생의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자아도취하기 마련이잖아요. 나 외에는 이 인물을 할 수 없으니까 인물과 나 자신을 굉장히 붙여놓게 되거든요. 그런데 '휴민트'는 한편으론 두려웠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박건과 박정민의 거리감이 너무 멀어서 제 눈에 오그라들지 않을까 염려했거든요. 다행히 영화를 보고 나니 그렇게까지 기시감이 들지 않아 감사했고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박정민)
박건의 날 선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류승완 감독이 건넨 레퍼런스들은 때로 배우에게 기분 좋은 압박감을 주기도 했다.
"참고한 영화는 엄청 많아요. 류승완 감독님은 USB에 영화를 담아주시거나 DVD를 빌려주시곤 하거든요. 그 안에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작품도 있었고 홍콩 영화들도 있었어요.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죠. 저는 주윤발이 아니니까요. 하하." (박정민)

영화 '휴민트' 스틸컷 [사진=NEW]
박정민이 '멋짐'을 구현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현장의 스태프들 역시 그를 '가장 멋진 박건'으로 빚어내기 위해 치열한 공을 들였다. 특히 조명 감독은 박정민의 얼굴을 360도로 연구하며, 머리카락 한 올의 높낮이까지 고려해 그에게 최적화된 비주얼 디자인을 찾아 나섰다.
"크랭크인 전에 조명 감독님께서 제작사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 제작사에 가서 얼굴을 360도로 다 촬영하고 머리카락을 올렸을 때부터 내렸을 때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가지고 저의 남자다운 얼굴, 디자인을 찾으려고 했죠. 조명 감독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지. 하하하. 멋지게 나와야만 하니까요." (박정민)
스태프들의 열정에 부응하듯 박정민은 매일 아침 '여백 정리'에 매진했다. 류승완 감독 역시 박정민의 자기 관리에 감탄하며 "다른 사람 같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러닝을 주로 했어요. 요즘 말로 '여백 정리'라고 하죠. 하하. 체중 감량을 하고도 아침마다 붓기를 빼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러닝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렇게 준비를 좀 했죠." (박정민)
"정민이가 엄청나게 체중 감량을 하고 왔어요. 저도 그렇지만 스태프들도 전부 깜짝 놀랐어요. 다른 사람 같다고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박정민은 준비가 철저하고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기로 유명한 친구에요.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배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배우는 외모 아닌 태도가 찍히는 거 같아요. 스크린에 투영되는 매력은 그런 거죠. 뒷모습만 찍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건 결국 배우의 상태가 찍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매력은 감독이 막 찾아주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느 정도 최적의 앵글을 찾고 조명 설치를 해 줄 수 있겠지만 그걸로 두 시간을 버틸 수는 없는 거거든요." (류승완 감독)
박정민이 치밀하게 자신을 깎아냈다면, 국정원 요원 조과장 역의 조인성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캐릭터의 시작점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처음부터 조인성을 염두에 두고 쓴 조과장은 배우 본인과 묘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캐릭터 이름이 '조과장'인 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조인성을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휴민트'를 관람한 관객들이 조과장에 대해 궁금해할텐데 조과장은 곧 조인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하. 혼자 살지, 일만 하지, 자기 일(연기)이 잘 안풀리면 괴로워하지. 조과장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 (류승완 감독)
관객들 사이에서 '런웨이'라고 회자되는 조과장의 걷는 신에 대해서도, 배우와 감독 사이에는 즐거운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저는 그냥 걸었어요. 걸어오라고 해서 걸어온 것뿐입니다. 하하. 특별한 디렉션은 없었어요. 그 전 장면의 감정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해석했을 뿐, 멋있게 걸어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조인성)
"일부러 런웨이를 걷듯 만든 건 아니에요. 조인성은 짧게 잡는 게 더 힘듭니다. 쇼트 길이가 길다는데 박건도 영화 초반 길게 걷는 신들이 있어요. 북한 식당까지도 한참 걷는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박건의 장면이 길어도 관객의 마음에 남는건 조과장이 걸음이라는 거잖아요. 하하하. 저는 결국 혼자 걸어가야만 하는 사람, 어느 순간 혼자 남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인성 씨는 오히려 모델 워킹을 빼고 담백하게 걸은 거예요. 사실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까요." (류승완 감독)
배우의 매력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유지되는 '상태'가 찍히는 것이라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휴민트'는 배우들의 치열한 자기 증명으로 채워졌다. 멋짐을 구현하려 애쓰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던 박정민과 조인성. 두 배우가 현장에서 주고받은 에너지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풍경마저 뜨거운 드라마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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