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의 B-컷] '왕과 사는 남자' 유해진이 포착한 박지훈이라는 풍경

영화의 한 장면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화려한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현장의 온도가 고스란히 남겨진 이면의 기록들을 주목합니다. 한 작품을 만든 이들의 인터뷰를 입체적으로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들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20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사극 흥행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매서운 속도다. 대중은 화려한 기록과 스크린 위 완성된 장면에 환호하지만 정작 작품을 빚어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결정적 순간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시나리오에는 없던 찰나의 제안, 카메라가 꺼진 뒤에야 비로소 보였던 상대의 진심 같은 것들이다. 흥행이라는 화려한 결과값 뒤에 숨겨진 오직 현장에 있던 이들만이 공유하는 'B-컷'의 서사를 톺아보았다.

이 완벽한 앙상블의 시작은 사실 '인기'가 아닌 감독의 '직관'에서 비롯되었다.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라는 신선한 조합을 한 울타리 안에 모은 장항준 감독은 '인복'이라는 겸손 뒤에 배우의 '본질'만을 꿰뚫어 본 집요함을 숨겨두고 있었다.

"인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거 누가 다 모았습니까? 하하. 사실 감독 10명에게 시나리오를 던져주면 다 다르게 캐스팅할 거예요. 저는 배우 캐스팅에 앞서 인기를 제외하고 오직 연기만 봤습니다. 매화 역의 전미도 씨는 분량이 적어 안 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오히려 분량을 늘린 케이스고, 단종 역의 박지훈 씨는 아이돌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오로지 '약한영웅' 속 눈빛만 보고 결정했죠. 엄흥도 역의 유해진 씨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미 제 머릿속에서 자동이었습니다."(장항준 감독)
 
배우 박지훈 유해진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배우 박지훈, 유해진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그렇게 모인 이들은 현장에서 서로의 거울이 되었다. 특히 서른 살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나는 유해진과 박지훈의 만남은 단순히 선후배의 조우를 넘어 서로의 에너지를 확인하고 충돌시키는 자극의 장이었다. 산 절벽 위에서 고성을 높이던 순간 유해진은 신예 박지훈에게서 예상치 못한 '불꽃'을 발견했다.

"지훈이가 아이돌 워너원 출신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활동까지는 잘 모르고 나중에 함께 한다는 걸 알고 '약한영웅' 클립들을 찾아봤죠. 작품을 위해 만나보니 에너지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특히 절벽 신에서 호흡을 맞출 때 그 에너지가 굉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현장에서 '안주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자극을 받았어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유해진)

이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현장에서도 영화의 온도를 결정짓는 찰나는 의외의 곳에서 탄생했다. 가장 서정적인 성취로 꼽히는 '강가 물놀이' 신은 사실 시나리오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촬영 틈틈이 홀로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던 박지훈의 뒷모습. 그 쓸쓸한 'B-컷'의 순간을 포착해 영화적 서사로 끌어올린 것은 선배 유해진의 혜안이었다.

"마지막에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때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물놀이하고 있는 단종을 슬프게 엄흥도가 바라보는 장면은 제가 직접 제안했습니다. 찍다 보니 엄흥도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너무 안된, 어린 자식 같은 느낌. 그를 슬프게, 측은하게 바라보는 신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극적인 죽음이지만 그의 곁에 이런 분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전달되길 바랐죠." (유해진)

"그게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어요. 쉬는 시간에 제가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거든요. 저도 납득했던 건, 한창 친구들과 놀 시기에 유배를 와서 주변에 아무도 없고 홀로 물장구를 치고 있는 뒷모습이 저인데도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선배님의 아이디어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박지훈)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 현장의 박지훈 사진왕사남 촬영 스태프 SNS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 현장의 박지훈 [사진='왕사남' 촬영 스태프 SNS]

두 배우는 카메라 뒤에서 쌓은 교감을 바탕으로, 프레임 안에서 서로의 눈을 통해 진실을 확인했다. 대사보다 강력한 것은 배우의 눈동자가 머금은 습도였다. 상대가 진심으로 그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서로의 충혈된 눈빛이면 충분했다.

"대사를 하다 보면 상대의 눈을 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 이야기 속에 상대가 있나 없나가 보여요. 슬픈 장면을 찍으면서 지훈이의 눈을 보면 벌써 이만큼 젖어있어요. 그걸 보면 보는 사람도 확 감정이 오거든요. 제가 감정에 젖어 있으면 지훈이 눈이 빠르게 충혈되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을 통해 '아, 지훈이는 이 이야기 속에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단종이라는 연약한 인물이 죽음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너무 잘 표현해줬고 그 바탕에는 진실된 진정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감탄했고 늘 존경하고 있었어요. 매번 선배님이 주는 에너지와 호흡에 대해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곤 했습니다." (박지훈)

결국 600만 관객을 움직인 힘은 잘 짜인 연출 이전에 현장의 이면에서 서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자극했던 배우들의 진심에 있었다. 강가에서 홀로 물장구치던 소년의 뒷모습에서 왕의 외로움을 발견해 낸 유해진의 시선처럼 '왕과 사는 남자'는 화려한 스크린보다 더 뜨거웠던 사람들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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